지난 주말, 가족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본 얼굴들이었지만 반갑기보다는 불편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딸이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오빠와 나를 차별했고, 상대적으로 어리고 만만했던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빠에게 나는 오빠와 차별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부모의 사랑은 다르지 않다며 나를 속이셨고 그 거짓말에 몇 번이나 속아 넘어갔지만, 30대가 된 지금 되돌아보아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결론에는 큰 변화가 없다.
나이가 들고 엄마와의 관계에서 울고 웃는 다양한 과정을 겪다 보니, 단순히 엄마가 '딸'인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도 '나르시시스트'의 경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판단에 무게가 실린다.
엄마는 본인의 결혼과 육아 등 모든 삶의 부분에서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식을 키운 것에 대한 엄청난 보상과 대우를 바라는 사람이다. 배우자 및 자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해주지 않으면 거기에 대하여 나쁜 사람, 불효자 프레임을 씌워버리고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
어렸을 적 나는 소심하지만, 남을 도우려는 성품을 타고난 아이였다. 그래서 늘 불평불만을 하는 엄마를 불쌍하게 여겼고, 그런 부족한 엄마를 채워주기 위해 '착한 딸 콤플렉스'에 걸려 나를 갈아 넣으며 엄마를 도우려 했던 시기가 있었다. 20대의 나는 내가 버는 돈을 나에게 쓰지 않고 엄마에게 바쳤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은 것을 사거나 먹는 행위를 할 때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좋은 것을 할 때면 늘 엄마를 챙기려 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더 해줄 수 있을지 늘 고민했고 그렇게 내가 주는 것들이 나에게는 최선이었지만 엄마는 더, 더를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고 우울증에 걸리고 삶의 의욕을 잃기도 했었다.
정신적으로 아팠던 시기에 나는 밤낮이 바뀌고 혈색도 없고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가족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 시점에 나는 스스로 내가 앓는 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의 반응을 보고 나는 더 이상 어떠한 금전적인 또는 정신적인 희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나의 고통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딸'이 더 이상 재기능을 하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있을 질문과 시선에 대해서만 신경을 썼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부모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자식을 낳았을까?'
이때가 엄마를 엄마가 아닌 완전한 제삼자의 객채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식을 낳고 거기에 대한 책임감도 부족하며, 보상심리만 가득한 사람.
스스로를 돌아볼 생각은 없이, 그저 사리사욕과 욕심만 가득 찬 사람. 나는 그런 엄마를 증오하기도 했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사랑이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자체가 현저히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아빠에게 기생하듯 살아가면서 매번 본인이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큰소리만 치는 엄마의 모습은 같은 인간으로서 환멸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
나에게는 이 문장은 인생의 모토 중 하나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바에는 결혼도 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도 낳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며 살았다.
엄마는 나의 연애와 결혼, 나의 미래에도 엄청나게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는 더욱 악착같이 살았다.
여자 혼자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빠르게 인지했고, 여러 직업군들 중 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세상에 기댈 곳은 나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결핍은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은 항상 곪아있었다.
싫어하는 존재이지만, 가족으로 엮여있는 한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존재.
어쩌면 가장 사랑하고 싶었던 존재이기도 한 엄마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사랑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간처럼 느껴진 적도 많았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에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사랑'. 나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낀 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랑할 존재가 부재하였기에 삶에 대한 소중함도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면 살수록 내가 이루는 것들은 많아졌지만, 그 속에 공허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여 따로 살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이 흐릿해졌다. 그렇게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엄마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마주하게 되면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돈을 요구하거나 물품을 요구해 온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도 아니면 남의 험담이나 누구의 딸은 이랬다더라 하는 비교질을 시작한다.
나는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구나. 괜히 왔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기 싫고, 엮기기가 싫다. 나는 엄마가, 아니 저런 류의 사람이 너무 싫다.
그럼에도 엄마이기 때문에 챙겨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자신이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선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고 자주 보고 싶지 않다.
엄마는 그렇게 대면대면하며 자신을 챙기지 않는 나를 두고 분명히 아빠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본인만의 감정이 중요한 사람이기에, 딸의 상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을 챙기지 않은 '매정하고 이기적인 딸'만 남아있을 뿐이다.
내가 가장 사랑받고 싶은 상대를 혐오하는 삶은 너무 불행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대에게 사랑을 퍼주고 포용을 하기엔 내 안에 사랑이 너무 궁핍하다.
가족을 만나고 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