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책임질 자신이 있는가?
요즘 나는 회사생활, 더 큰 범위에서 말하자면 조직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이건 하루 이틀 느끼던 감정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감에 따라 더욱 진정한 내 일과 삶을 찾고 싶다는 갈망이 심해지고 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지시하는 상사를 따르는 꼭두각시 같은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이루어 나가는 삶이었다. 진정으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
조직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크게 느끼는 것은 조직 속의 모든 것들은 정형화되어 있고, 나라는 존재는 그 속에서 그저 하나의 부속품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는 것이다. 고장이 나지 않고 잘 적응한다면 잘 움직이는 부속품이 될 것이고 중간에 고장이라도 나버리면 금세 바뀌어질 수 있는 그런 대체 가능한 부속품.
직장생활 7년 차에 이르는 지금은 가끔씩 내가 참 조직에 걸맞게 잘 길들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나라는 존재를 거부당하고 싶지 않아 나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고집하다 보니 상사와도 조직과도 트러블이 많았다. 규격화되지 못하고 혼자 모가 나서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부속품인 나는 그저 윗사람들에게 성가신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낸 끝에 나는 결국 잘 길들여진 하나의 로봇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회사가 내 삶 속에 깊이 침투하여 모든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이 회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것을 이상하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지금의 내 인생이 개인적으로는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 돈을 받기 때문에 내가 돈을 받은 시간만큼은 업무를 위해 나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직장을 퇴근한 이후에도 당연스럽게 회사 일에 응대하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나를 보며 한동안은 ‘프로 직장인 다됐네~’ 라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지만, 내면의 나는 점점 더 삶의 의미를 잃고 공허해져 갔다. 나의 내면 속 실상은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야'라는 핑계 속에 숨어 나다움을 잃어버린 채 조직생활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타협해버린 소심하고 겁이 많은 모습만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을 인정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인정을 하고 난 뒤 빈껍데기만 남은 듯한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씁쓸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나다움'을 잃지 않았던 20대에는 '패기'가 있어서 ‘이 회사 아니면 뭐 어때!’라는 마인드로 당당하게 의견도 제시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살아왔으나 30대가 된 지금은 솔직하게 마음 한편에 ‘여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꽤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시간의 흐름, 다르게 이야기하면 노화라는 자연의 이치를 이겨내지 못하고 약해져 가는 느낌이 든다. 젊음을 예찬하시던 어릴 적 어르신들의 말씀이 왜 나는 벌써부터 공감이 가는 건지.
20대에는 돈이 없었다. 체력도 시간도 열정도 의지도 마음도 충만했자만,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돈'이 없었다. 그래서 돈을 벌다 보니 체력을 소진했고, 시간을 소모했다. 열정과 의지를 펼쳐 보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낼 소중한 시간들을 돈을 버는 데에만 쓰다 보니 의미 있게 사용하질 못했다. 돈이라는 것이 한정적이었던 내 삶에는 '선택'과 '포기'라는 2가지 선택지가 항상 따라다녔다. 하나를 하면 하나는 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거나 지금 꼭 해야만 하는 것에만 투자를 할 수 있었기에 그 기회는 더없이 소중했고 간절했다. 그런 간절함은 그 당시에 내가 했던 도전들이 좋은 결과치를 만들어 낸 이유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반대로 포기를 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애초에 가능성 자체가 없었다고 생각했으니 포기를 하고 나서도 아쉬움이나 미련이 없었다.
30대가 된 지금은 그렇게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왔던 '돈'에 있어서 여유로움이 생겼다. 적어도 이제는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도전해 볼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간'이 없어졌다. '체력'도 점점 떨어져 간다. 체력이 떨어지니 집중력, 자신감, 도전정신도 옛날만 못한 게 사실이다. 그동안 '돈'에 구애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 온 덕분에 지금은 취미로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하나만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웬만해선 한 번씩은 다 도전해볼 수 있게 되었고, 막상 해보다 마음에 안 들어도 나에겐 돌아갈 곳도 있고 돈이 나올 구멍도 있다는 보험이 있어서 그런지 치열하고 간절하게 도전하던 20대 때와는 달리 좀 더 여유롭고 안정적인 마음으로 도전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 또한, 회사에서 잘리거나 퇴사를 하게 되면 또 달라질지 모르는 일시적인 여유로움일 수 도 있지만, 일단은 그렇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그런 지식 또는 기술로 먹고 살만큼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힘들면서도 매우 의미 있고 값진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삶이 이런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죽을 만큼 노력해서 잘해지게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 잘해지기 위해선 수많은 시행착오와 그 속에서 실패하는 경험,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들을 쌓아나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좋아하던 일조차도 싫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거나 그저 좋아하는 일은 취미 정도로 두면서 잘하는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삶을 택하고 그런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한때는 후자의 삶을 살려고 했었다. 잘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좋아하는 일은 그저 취미로만 하자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좋아해서 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누굴 이기려고 하거나 무조건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멋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좋아하는 일은 그저 자기만족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나만 즐겁고 나만 재밌어서는 돈을 벌 수가 없다. 대중에게 시선을 끌지 못한다면 필요로 되지 않는다면 돈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인기도 명예도 돈도 결국 대중의 관심도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좋다는 것만 하다 보면 배고픈 예술가의 상태로 전락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약 남들보다 눈에 띄게 잘하게만 된다면 반드시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그 재능이 발굴되어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의 주인공도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고민한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한다. 좋아하는 일을 남들보다 잘하거나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끈기 있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할 때까지 지속할 자신이 있는지. 그러기 위해 좋아하는 일에 더 투자하고 공부하며 내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의지와 열정이 있는지. 사회에 나오면 남들만큼만 해서는 안되고 적어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야 어떤 분야든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건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럴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