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행함 속에서 허우적대던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설에 가족들과 모여 어릴 적 있었던 부모님의 사고 이야기를 다시금 듣게 되었다. 원래도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던 일이었는데 구체적으로 그때의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이야기가 무르익다 보니 과거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30여 년 만에 제대로 들어볼 수 있었다. 아빠는 결혼 전에 머리가 깨지고 무릎뼈가 다 망가지고 전신에 부상을 입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셨었다. 버스와 부딪혀 몸이 날아올랐다 떨어진 너무나 큰 사고였는데 아스팔트가 아닌 논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살아난 것부터 기적이라고 하셨는데 수술 이후 장애를 갖게 될 거라던 다리를 재활치료를 통해 다시 걷게까지 되었으니 기적도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없다. 어릴 적 나에겐 너무나 당연했던 걸어 다니던 아빠의 모습이 어찌 보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일이었다.
이때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던 아빠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온 순간이 있었다. 그건 엄마가 물에 빠져 의식을 잃고 대학병원에 옮겨진 사건이다. 나는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른들이 말을 해주지 않아 엄마가 사고당했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심정지까지도 겪었던 엄마는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며 깨어날 확률도 크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아빠는 세상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기적을 바라며 기도를 드리며 지내던 어느 날 엄마는 기적적으로 사고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건강한 정신 상태로 깨어났다.
물에 빠졌던 사고로 오랜 시간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무조건 기억상실이나 뇌기능 상실이 올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지만 신기할 정도로 엄마는 장애 없이 깨어났다. 이 일은 의학계에서도 기이한 일이었는지, 기적적인 일이라며 레지던트들이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엄마를 찾아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생과 사를 오가는 이런 큰 사고를 몇 번이나 겪으시며 아빠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완전히 변하셨다고 한다.
특히나, 가정을 꾸린 후 생긴 엄마의 사고 현장을 지켜보며 죽음과의 사투 끝에 다시 살아난 기적 같은 일을 겪으며 배우자에 대한 소중함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새롭게 주어진 지금의 모든 삶의 순간들에 소중함을 갖게 되셨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고 느끼는 아빠의 모습도 엄마의 사고 전후로 정말 많이 다르다. 일례로, 엄마의 사고 이후로 나는 집에서 아빠가 화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들으면서도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니 엄마와 아빠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 수 있는 것이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보잘것없어 보이던 하루가 돌이켜 보면 얼마나 수많은 기적들이 모이고 모여 생긴 하루라는 것인가.
그동안 사소한 것들에, 사소한 일들에 불행하다고 느끼고 불평불만을 가졌던 내 모습은 지금 내가 가진 이런 모든 기적적인 순간들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평생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갖지 못할 수도 있는 이 소중한 가족이라는 존재를, 그리고 그들과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는 이 하루를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감사하고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일찍 부모님을 여의셨지만 우리에겐 그런 시련을 주지 않으시려는 듯 큰 사고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서 고단한 인생길을 살아 내시고 지금까지 든든한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언제나 날 지지해주는 세상 유일무이한 내편인 우리 부모님.
어려서부터 모난 구석이 많은 나를 담아낸 그릇 큰 우리 오빠, 삐딱한 나의 모습도 언제나 편견 없는 시선으로 이해해주려 했던 우리 오빠, 나를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 항상 보듬어주는 착한 우리 오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춰주고 배려해주는 고귀한 그 마음들을 나는 매일같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당연하게만 여기고 탓도 하고 소홀하게 대했던 마음을 버리고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 나는 조상신이 있다고 믿는다.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시고 계신 우리 조상신님께도 감사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시는 모든 존재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결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