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아닌 사랑을 기억하라.”
<오모나 웹진> 영화 리뷰
글 : 김동우
오디션의 모든 것, 오모나 "omona.me"
좀비라는 소재만으로는 충분한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무너진 세상에서 불신과 폭력을 반복하고, 다시금 생존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만큼 정형화된 탓에, 장르의 정체성마저 예측이 가능해졌다.
수많은 좀비 영화들이 쉽게 읽히고 금세 잊히는 이유다.
2002년 대니 보일은 <28일 후>를 통해 새로운 레퍼런스를 만들었다.
좀비는 느리고 무의식적이라는 고정값에 변칙을 준 것도 있지만,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구조를 탐구하려는 시도에는 도전 의식이 명확했다.
<28년 후>는 18년 만에 돌아온 그의 후속작이다.
도파민이 터지는 쾌감은 없지만 삶과 죽음, 문명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주인공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는 열두 살의 어린 아이다.
그는 홀리 아일랜드에서 평생을 보냈고, 죽음의 부재 속에서 살아왔다. 죽음이라는 건 언제나 섬 바깥의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스파이크에게 보호자 역할을 강요하고, 호기심과 불신 사이에서 내면의 균형까지 요구한다. 과거에 대한 경험조차 없는 세대가 이러한 진폭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가.
출정식을 마친 뒤 섬에서는 파티가 열린다. 제이미(에런 테일러존슨)는 거짓을 늘어놓으며 기세를 높이고,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스파이크는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이중성과 무책임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무기력과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무책임,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들의 무책임에 큰 회의감을 느낀다. 그렇게 스파이크는 아일라(조디 코머)를 데리고 본토를 향해 탈출을 감행한다.
이쯤에서 러디어드 키플링의 ‘부츠’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1915년 테일러 홈스가 직접 낭독한 시(poem)로,
전쟁 속에서 절망과 광기에 사로잡힌 군인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불쾌하고 섬뜩한 이 음성에는 뇌리에 울려 퍼지는 군화 소리, 언제 끝날지 모르는 행군의 고통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부츠’는 작품 속 세계관이 고스란히 전해 지는듯한 착각을 안긴다.
후반부 켈슨(랄프 파인즈)과의 조우는 죽음과 삶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한다.
그는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8년 후>가 좀비라는 장르적 매개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 뼈의 사원은 삶과 죽음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고, 삶으로 도착함과 동시에 죽음으로 출발하는 순환의 여정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극찬이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개봉 당시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진 이유도 관객들이 느끼는 다양성의 시차였을 것이다.
<28년 후>는 트릴로지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충분한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한 부분들 나아가 여러 복선을 남겨둔 상태다.
니아 다코스타가 연출을 맡은 속편은 이번 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컬트적 인기를 끌었던 좀비는 2000년대 이후 게임, 드라마, 웹툰, 소설로 확장되며 대중적으로 성행했다.
하지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소재를 사용만 할 뿐,
이야기로 만드는 사람은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건이 아닌 감정의 확장으로 완성된다. 관객이 그것에 닿을 수 있을 때,
이야기도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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