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가는 이에게 물이 아닌 피를 떨구고 만다는 건.”
<오모나 웹진> 영화 리뷰
글 :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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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의 제목이 가지는 의미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플라워 문: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 도통 무슨 말인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국내에서의 제목은 ‘플라워 킬링 문‘, 원제는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다. 두 제목은 얼핏 보면 유사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플라워 문’은 인디언들의 시적인 표현으로, 실제 달(月)이 아닌 날짜의 5월을 의미한다. 4월까지 피었던 작은 꽃들이 이 시기에 자라는 장대한 꽃들로 인해 땅에 묻히는데, 미국의 식민지 폭력을 은유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플라워 문의 ‘살인자’들은 누구였는지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 제목의 경우 문법적으로 보나, 의미적으로 보나 영화의 정서를 크게 탈색시킨다. 꽃을 죽이는 달인지, 달의 살인자라는 건지 해석 자체도 불분명해진다. 이처럼 제목 자체가 서사의 일부인 경우,
원제에 담긴 다양한 층위를 지워낸 것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2. 토지와 권력, 그리고 두 혈통과 종족
이는 미국과 원주민들에 대한 어두운 역사의 장이자, 혈족 간의 갈등이다.
그리고 한 종족이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비극이다. 흥미로운 점은 백인과 홍인 모두 각자의 전통 아래 순종한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원주민이 순혈과 혼혈을 따지는 것 또한, 그에 따라 물려받는 재산과 자격 유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윌리엄(로버트 드 니로)의 지시에 동조하는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리지 큐(탄투 카디널)에 따라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몰리(릴리 글래드스톤)네 가족들까지, 두 공동체 모두 수직적이고 전통적인 혈족 사회다.
3. 어니스트 버크하트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영웅도, 무법자도 아닌 어니스트다.
그는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배신에 대한 일종의 대리인이며, 자신의 아내에게 헌신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도전에 직면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두 종족 간의 결혼이라는 변수다. 어니스트의 우유부단한 행동들은 그가 이룬 가정이 일종의 완충지대이자 회색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어니스트는 딸의 죽음을 경험하기 전까지 삼촌의 말에 넘어가 위증을 하려고 했고, 아내에게 독이 든 주사를 놓기도 했다. 그는 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여전히 삼촌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놓인 인물이다. 양쪽의 관계 사이에 낀 그는 사랑을 느끼면서도 시들어가는 이에게 물이 아닌 피를 떨구고 만다.
4. 신성함과 불경스러움 사이의 단층선
그렇게 원주민들은 멸족의 위기를 거쳐 백인의 미국 사회에 서서히 잠식당한다. 더 이상 침입자와 원주민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전자를 부정하자니 자신의 반쪽을 부정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수많은 이들이 모호성 안에 종속되는 것이다.
영화는 오세이지 살인사건을 통해 악의 본성에 대해 탐구한다. 단지 불의를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부와 불평등의 형성에 얼마나 본질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
태연자약한 폭력과 침탈의 역사가 스며든 100년의 원죄다.
5. 옳은 길은 좁다, 추악한 실패에 대한 참회록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통렬한 반성을 촉구한다. 검은 피로 얼룩진 죄악들과 이를 유희하려는 현세대를 향해 자신들이 어떤 역사 위에 나라를 세웠고, 그 역사는 반복될 수 있음을. 스스로 무대 위의 연사가 되어 이 영화조차 부끄럽고 초라한 쇼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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