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나 웹진> 영화 리뷰
글 : 김동우
오디션의 모든 것, 오모나 "omona.me"
<브루탈리스트>의 예술과 야망, 트라우마의 역로는 흥미로운 반면 연극적으로 짜인 듯한 인상을 준다.
라즐로 토스를 향한 정서적, 신체적 폭력이 상흔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 그 이상의 것을 담아내기 위한 초석이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플롯은 영화 속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변곡점 없이 같은 자리에 갇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프닝 크레디트의 트래킹 샷과 자유의 여신상, 롱 테이크까지 영화의 프레임은 특별하다. 35mm 필름으로 촬영에 임하고, 15분의 인터미션을 하나의 흐름으로 결속시키는 톤 앤 매너도 인상적이다. 감각적인 사운드트랙은 방대하고 독립적인 서사시라는 영화의 야망과 잘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두 세상의 충돌, 그 간극을 수려하게 빚어낸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을 더한다.
아메리칸드림을 향한 라즐로의 여정은 서사적으로 풍부하고 추진력이 있다.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혼란 속에서 건축이 어떻게 그를 사로잡는지,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성도 정립하고자 한다. 하지만 <브루탈리스트>의 명암은 태연자약한 폭력과 침탈의 역사가 아닌, 본질을 벗어난 불의를 제시하는 데 있다. 이는 후반부에 다가설수록 영화가 불필요하게 노골적이고, 과장된 채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의도와 다르거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브래디 코베는 전반에 걸쳐 탐구한 모든 주제를 설명한다. 라즐로가 왜 위대한 인물인지, 그가 설계한 건물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떻게 반유대주의와 혐오와의 투쟁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호소한다. 문제는 개방적인 서사를 취한 영화가 편의적인 보이스 오버로 목적지를 규정하면서 당위성이 떨어지고, 많은 것을 무색하게 만든 점이다. 그렇게 <브루탈리스트>는 불타오르면서 추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5분의 방대한 시간을 이렇게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현대의 고전이라는 찬사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야심차고 웅장한 도전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존재 가치나 성취와는 별개로 이질적이고 신경질적인 흐름은 아쉬움은 있지만,
<브루탈리스트>는 영화 예술의 잔혹과 동시에 세상의 공명(共鳴)을 위한 횃불을 치켜올리며 막을 내린다.
https://www.instagram.com/omona_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