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MOZ Mar 02. 2023

나를 덕질하다

덕질.

국어사전 뜻 :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


따라쟁이.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듣고 뮤비를 본다. 학년이 바뀌어 다른 친구를 만나면 내 MP3에는 그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 파일로 가득 찬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덩달아 보고 같이 그림을 그린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생각하기보단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관심과 애정을 더 쏟았다.


​​

울보. 친구들과 또는 연인과 말이 안 통할 때 속상해서 운다. 불통즉통 통즉불통(不通卽痛 痛卽不通). 내가 자주 외는 말이다. "몸에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통증이 있다. 통증이 있으면 소통이 안 되는 거다." 한의학에서 하는 말이라 우리 몸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말을 관계에도 쓴다. 사람 사이에 소통이 안 되면 아프다. 서로를 찌르고 부수고 괴롭힌다. 오해가 발생한다. 악의 순환고리가 생긴다. 또 통증이 있으면, 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되고 있나 생각해 봐야 한다.


​​

덕질의 출발점은 언제나 친구였다.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을 본 것도, 뮤지컬을 관람한 것도. 덕질을 하는 매체가 달라지고 직업군이 달라졌을 뿐이다. 굿즈를 사고 n차 관람을 했다.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았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후회하냐 묻는다면 후회하진 않는다. 그때는 그랬어야 했으니까. 내 생활을 윤택하게 해 줬으니까. 그 기쁨, 벅참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떠올리면 행복하고 아련하고 애틋하다.


​​

노트북 구매를 몇 개월 고민한다. 전자기기에 진심이라 오버 스펙으로 사는 걸 즐기기에  돈을 모은다. 근데 돈을 모으다 보니 계속 더 좋은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구매를 해야 이 욕구가 멈추겠구나 싶어 일단 사양을 딱 정해서 산다. "결제는 일시불"이라는 나름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할부했다. 매달 나가는 금액을 보며 "무리했나? 다음엔 절대 할부 안 해!!"를 외치지만 내 손에 쥐어진 영롱한 노트북을 보며 "그때 사길 잘하긴 했어"라며 자위한다.


​​

소비는 급격히 줄었다. 노트북 할부로 나가는 돈을 갚으려 하니 새는 주머니를 꿰매야 했다. 덕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봐야 하는 뮤지컬이 무엇인지, 어떤 캐스팅으로 봐야 하는지, 어느 사이트에서 예매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꿰고 있었지만 볼 수 없었다. 아니, 보지 않았다. 과감하게 쳐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로부터 오는 고통과 함께 생각 전환을 한다. "남 덕질을 못 하니 내 덕질을 하자"라며 궤변을 늘어놓고 스스로 설득한다. "뭔 멍멍 소리야" 했던 그 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먹히기 시작했다.


​​

나는 스스로와 안 친했다. 남에게는 그렇게 관심이 많고 그가 좋아하는 것까지 파고들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소홀했다. 혼자 있어도 자주 남을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거나 돌보지 않았다. 불통즉통(不通卽痛). 괴로웠다. 아니 괴롭혔다. 화살을 나에게로 겨냥하고 한 발 한 발 쐈다. 가까운 곳에서 쏘는 화살은 강력하다. 근데 사격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멍멍 소리인 "나를 덕질하자"가 더는 화살을 쏠 수 없게 했다. 이제는 지금껏 꽂혔던 화살을 거두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해야 했다.


​​

그러기를 며칠,  . 혼잣말이 어색하지 않다. 버터플라이 허그로  어깨를 부둥켜안는다. 어디선가 들은 "나랑 평생 함께하는 사람은 나다" 외친다. 통즉불통(痛卽不通). , 드디어 나와 통한다. 홀로 있어도 편안하다. 남과 함께해도 눈치  보고  취향을 확실히 의사 표현한다. 가끔 "이게 맞나?" 흔들릴 때면 벽에 붙여둔 적바림을 읽는다.



나를 사랑하자

달라지자, 바뀌자
나는 소중하다
나도 사랑받아도 되고 행복해도 된다
외면과 내면을 고루 가꾸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