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랑이를 벌이다 문득 ‘그 생각’이 나면 나의 잘못을 빠르게 뉘우치고 사과한다. 친구와 관계에서 너무 마음을 주고 괜히 그랬나 따지다가 ‘그 생각’이 나면 그냥 옆에 있을 때 잘하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도전할지 말지 고민하며 망설일 때 ‘그 생각’이 나면 그냥 한다. ‘그 생각’의 힘이 이렇게 강하다니. 알고 있었지만 역시 글로 쓰니 더 크게 다가온다. ‘그 생각’은 ‘오늘 내가 세상을 떠날 수 있다’이다. 죽음은 내가 가진 육체적 한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죽음이 크게 다가온다.
19년 11월, 묻지마 뺑소니 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죽었다. 이후 인생은 덤이다. 내게 추가로 주어진 시간이니 더 열심히 살았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했다. 과감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났다. 말로 전도도 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예수님 믿으라고 말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려면 오늘 당장이라도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걸 다이어리에 마구 쓰고 도전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더 살갑게 대하려 한다. 별것 아닌 일에는 마음 쓰지 않고 털어버린다. 내 귀한 시간과 마음을 쓰고 싶지 않다. 우선순위를 정한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게 무언가.
21년 3월, 대학 동기가 6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 19년 5월에 봤을 때만 해도 건강해 보이셨는데. 4년 동안 같은 교실에서 동고동락했다. 마음이 허했다. 슬펐다. 이렇게 다시는 못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생각해 봤다. 추억이 떠올랐다. 같이 MT에 갔을 때 나이 신경 쓰지 않고 멋있게 춤을 추시던 것, 쉬는 시간마다 먼저 자리에 앉아 책을 보며 공부하시던 것, 기숙사에서 교실까지 차로 태워다 주시던 것… 나는 어머님을 존경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어머님처럼 살고 싶었다. 내 나이 때문에 뒤로 숨거나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런 그가 떠나니 먹먹했다.
이별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주어진 시간 동안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껴안고, 조금 더 사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