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MOZ Jan 30. 2023

연약한 애


2023년 1월 10일 18시 28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엄마에게 합의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2022년 7월 13일 9시 20분경 퇴근길 음주 오토바이 신호위반 사고가 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 기억을 잃고 귀와 머리가 찢어지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새벽에 응급 수술하고 2주 후 찢어진 귀에 한 살이 되지 못하고 상한 살을 도려냈다. 돈이 없어서 못 준다는 가해자에게 추후 치료비를 받았다. 아빠가 들어둔 자동차보험에서 무보험차상해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 가해자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주 2일 일하는데 오늘은 마침 근무 날이다. 저녁 식사 전 연락 받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먹는데, 맛을 못 느낀다. 이게 무슨 맛일까. 눈물이 나려 하고 침이 고인다. 코는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다. 식당에서 주책이었을 테니까. 눈치 없는 눈에게 눈물 흘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감정이 북받친다. 혼자 있었으면 이미 울었을 거다.

엄마, 아빠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같이 고통받았고 고생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괴롭히던 보상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니 허무하다. 절대 이걸로 다 복구될 수 없는 나라는 사람, 존재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함에 서럽다. 사고 나고 원룸에서 절규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속상하고 아프다. 마음속에서 새어 나올 때마다 정리했지만 남았던, 눌렸던 밑 감정이 두둔실 올라온다. 한바탕 울음을 토해내고 싶다.

어쩌면 평생, 나를 향해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를 피하고 욕하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육두문자를 읊조리며 도끼눈으로 찍고 베어버릴 듯 노려볼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썩은 뿌리, 상한 마음을 보고도 토닥토닥해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관계에 형편없다. 가까워지려고 하면 긴장한다. 무언가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빨리 안정을 취하고 싶어 급해진다. 마치 숙제 끝내듯 얼른 그 사람을 알아버려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내가 이것을 인지하기까지는 글쓰기와 공동체의 도움이 있었다. 이전에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면 거리를 뒀다. 나에 대한 정보를 최소한으로 열어두고 ‘그래도 좋으면 곁에 있겠지’라는 식으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런 내가 작문공동체 삼다를 만나고 변했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나를 꽁꽁 감추고 싸맸다. 한 주, 한 주 다른 이의 이야기를 읽고 친해지고 수용 받았다. 오롯이 나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안전함 안에서 내 이야기를 조금씩 풀었다. 매번 위로받고 칭찬받고 인정받았다.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지 한계를 두는 속마음 이야기도 지경이 넓어졌다. 거울에 마음을 비추어 살피고 속내를 쓴다. 나 자신, 다른 이와 관계가 좋아진다. 사람 사이에 긴장이 당연함을 배운다. 친해지는 과정 중 무언가 힘들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또 잘하고 싶어서, 좋아해서 몸에 힘을 주고 있구나 깨닫는다. 이렇게 친구 관계도 어려운데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 맺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그래서 지금까지 연애를 안 하고 싶었다. 못했다.



자신감이 없었다. 과거 사진을 보면 전혀 뚱뚱하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그렇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마른 사람들이 많았던 건데 그때는 몰랐다. 외모에 자신 없음이 이 나이 먹도록 내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자신 없으니 눈을 낮췄다. 키가 작고 내 이상형이 아니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나도 그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나랑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구나’ 깨달았다. 내가 키가 크니까 키 큰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 당연하다. 절대 무시할 부분이 아니다. 물론 무조건 키 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키 큰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는 잘 먹는다. 운동을 좋아한다. 그래서 살과 근육이 많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의 생김을 관찰하고 받아들인다. 맞는 사람을 찾는다. 이제 솔직하게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싶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제목이다. 보자마자 찔렸다. “그래. 나는 상처 받기 싫어서 사랑하기 싫어두려워 벌벌 떨고, 무서워 사랑을 섣불리 선택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연애를 검색하면 좋고 가볍고 즐겁고 행복하고 꽁냥꽁냥한 것이다. 어렵고 아프고 힘들고 슬프고 무거운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정의에 혼란스럽다.   삶이 버겁고 무겁고 견디기 벅차서 차마 연애를 선택할 여력이 없다. 이런 나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생사 고비를   넘기다 보니 연애를 하다가 내가 먼저 떠나면 남은 사람은 어쩌나 생각도 든다. 별의별 생각에 잠겨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자 누군가 말해줬다. 있다고, 잠시라도 나를 알아서 좋을 거라고 했다. 모르는 것보다 훨씬. 어떤 이는 나에게  맞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진지하고, 때론 엉뚱하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오두방정을 떠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사람 말이다. 올해의 계획은 애인 만들기다.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의 말을 믿고 다시 한번 기대해보는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음악, 위로의 손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