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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로 May 07. 2020

성숙한 어른의 음식, '간장게장'

© 2020 Roh

우리는 누구나 점차 성숙해지고 싶어한다.

다행히도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성숙이 우리에게 내려앉는다.

하지만 정신적인 성숙도는 살아온 시간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이는 정신과의사로서 진료실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매일 느끼는 일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즈음, 정신적 성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음식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그것은 바로 간장게장이다.

당신이 만약 간장게장을 여유있게 잘 즐긴다면, 나름 스스로 꽤 성숙한 어른이라 자부해도 좋다. 


심리학자 Tim Elmore에 따르면, 성숙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성숙한 사람은 더 큰 행복을 위해 즉각적인 만족을 미룰 수 있다.

- 간장게장은 행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두꺼운 껍질을 뚫고 목표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노동의 대가를 요한다. 내부의 복잡한 격벽은 차라리 미로에 가깝다. 긴 노력 끝에 얻게되는 결과물이 때로는 미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각 부위의 해체를 끝내고, 게딱지에 밥을 비벼먹는 마지막 성취의 순간은 그 어느 음식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희열이 있다. 


 2. 성숙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다.

- 게는 다리가 많은 데다가 마디도 참 여럿이다. 이 많은 부위들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충분한 시간은 필수이다. 온전한 집중의 순간, 때로는 침묵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동행이 있다면 이를 불평하지 않을만큼 편한 사람일수록 좋다. 또한 해체작업이 치열한 만큼 식사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때로는 게장집 주인의 눈총이 따가울 지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때, 신구 선생의 오랜 질문(주1)에 비로소 온전히 답할 수 있다. 


3. 성숙한 사람은 겸손하며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안다.

- 간장게장은 함께 먹는 음식이다. 한편, 간장게장과의 대결은 한바탕 전투와 진배없다. 가위와 집게를 두 손에 들고 동료와 함께 전장에 나선다. 커다란 집게발의 공격을 피해 두터운 갑옷을 뚫어내야 한다. 전장 위에 동료가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게딱지를 무심히 양보할 수 있어야 게장을 진정으로 즐길 자격이 있다. 


4. 성숙한 사람은 항상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 간장게장을 먹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음식보다 많은 도구들이 필요하다. 가위, 집게, 젓가락, 및 비닐장갑 등은 기본이고, 게딱지 위에 밥을 비벼먹기 위해선 숟가락도 필수다. 이런 도구들을 사용해서 게장을 공략하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몸통의 앞과 뒤, 다리의 종류에 따라 껍질의 두께가 다르고, 내부 격벽의 구조가 다르며, 접근법도 달리 해야 한다. 자신만의 틀 안에 갇혀서는 안되며, 늘 새로운 방법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5. 성숙한 사람은 늘 감사를 표현한다.

- 긴 시간을 기다려준 동행과 게장집 주인에게,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어준 꽃게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또한 긴 여정을 견뎌낸 자기 자신에게도 물론이다. 


해체된 게껍질들이 하나둘 쌓여 더미를 이룬 모습을 보면서, 한끼 식사를 위해 치열했던 긴 수고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고, 성숙이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어서도 문제다.

그간 먹어치운 허다한 꽃게들이 한을 품고 기다린다면, 저승가는 길도 녹록치 않을 듯 하다. 


(이 글은 며칠 전 1시간 30분 동안 모 음식점에서 분투했던 생생한 기억을 토대로 한다.)

주1: ‘니들이 게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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