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님께 - 담임 드림
부모님들께.
안녕하세요? 오늘이 종업식이네요. 저희 학교는 종업식 후 오후에 바로 졸업식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 보내고 나서 따로 밴드를 올리거나 문자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글을 써 둡니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조용한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길 바라며!)에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 종업식날 오전 9시 시점으로 글을 씁니다.
2월에 마무리 한 프로젝트가 2개 있었는데요, 바로 '장금이 프로젝트'와 '어깨동무 책동무 프로젝트'입니다. 사실 장금이 프로젝트는 바른 글씨를 쓰게 하겠다는 열정 보다는 요리에 대한 장금이의 마음과 열정을 우리도 배웠으면 해서 시작하게 되었고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장금이 만화에 나오는 대사를 정자체로 쓰는데, 통과 기준이 엄격해서 아이들이 지우개로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쓰며 정자본이랑 똑같이 쓰려고 한 획 한 획을 숨죽이며 쓰는 모습도 정말 귀여워요. 그런데 장금이 프로젝트도 끝날 무렵에 보니 아이들 글씨가 정말 많이 늘었더라고요. 또 쉬는 시간에 장금이 등장인물을 같이 이야기하고, 수업할 때 제가 성대모사하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ㅎㅎㅎ 재미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또 하나는 어깨동무 책동무 프로젝트입니다. 앞에 나와서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단순한 프로젝트인데요, 그래도 듣는 아이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보조선생님께서 30권의 책을 스캔해서 PPT 파일로 만들어주셨어요. 저도 "크게 읽어주세요!"라고 요구하지 않고(30여명의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경험은 처음일 것이므로 어느 정도 커야 할지 아이들은 감이 오지 않지요. 또 감이 온다고 해도 1학년 아이들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고요.) 마이크를 준비해서, 마치 선생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저마다의 빛깔로 읽어주는데, '우리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어요. 입학하면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또랑또랑 자기 목소리로 좋아하는 책을 골라 신나게 읽어주는 모습도, 너무 긴장해서 읽어줄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도, 다 사랑스럽고 뭉클했습니다.
이렇게 두 개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가만히 1년을 되돌아봅니다.
아이들과 즐거운 일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보람이고 기쁨인 것 같아요. 교사라면 누구나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짓 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갯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도종환, 스승의 기도 중-
우리 1학년 꿈쟁이들, 갓 입학하고 1년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닐 수 있어서 그것이 가장 큰 감사입니다.
프로젝트 2개를 끝내면서 보니 이제 우리 아이들이 날개에 힘이 생겨 2학년으로 점프 할 수 있겠습니다.
작년은 저에게도 의미있었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2009년에 교사 생활을 시작해서 중간에 육아휴직을 짧게 하긴 했지만, 교직 10년차를 맞이하여 또 한 계단을 오른 것 같아요. 학교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여러 성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로서의 소명을 조금 더 굳힌 계기도 있었고,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도, 앞으로도, 더욱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세월이 쌓이는 만큼 더 발전하고 깊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종업식 때는 작년과 달리 울지 않으려고요!
작년에는 올려보내는 것이 슬퍼 눈물이 났는데, 내년에 저희 아이가 입학을 하게 되면서 제가 다른 학년으로 올라갑니다! (몇 학년일지는 저도 궁금해요!) 윗 학년으로 올라가서 자리잡고 버티다보면 우리 아이들 졸업 전에 꼭 한 번은 더 만날 것 같아 쿨하게 웃으며 헤어지기로 단단히 마음 먹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6학년이 되었을 때 꼭 제가 담임을 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1학년과 6학년 담임 선생님이라니!
(저만의 바람이면 안되는데 ㅎㅎㅎ)
작년 2학기 갑자기 브런치를 시작하고 생각보다 글을 많이 쓰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교사면서 학부모의 삶을 시작하는데...긴장과 두려움이....ㅎㅎㅎㅎ 선배 학부모님들께서 많이 가르쳐주세요. 아이와 같은 학교에 있다는 것이 조심스러워 많이 고민했었는데요, 워낙 제가 학교 옆에 살다보니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자녀와 함께 다니는 교사맘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 가족관계를 숨기기도 하는데요, 저는 온 동네가 다 알아서 숨기는 것이 불가능하네요. ㅎㅎㅎ) 이리저리 부딪히며 더 겸손해지고 둥글어지기만을 바라야겠지요.
학기초 학부모 총회때 소개해드린 시 한 편이 생각나네요.
아직도 제 책상에 붙어있는 말...
정말 우리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오며가며 반갑게 인사 나누어요.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
학부모님께 - 담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