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혼자 놀기- 트라파니

시칠리아 여행기

by 신순영


트라파니에 머물던 둘째 날 종일 비가 왔다.

오전에는 제법 빗방울이 굵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 잠깐 바닷가 쪽으로 산책한 후 카페로 피신했다.

동네 사람들이 매일 문턱이 닳도록 모여드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전부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문화가 여전히 신기하다.

몇 모금 되지도 않을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오늘의 안부를 묻고 스몰토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일상을 엿보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에 있을 때 공복에 커피는 생각도 않는데 여기 사람들처럼 크로와상과 카푸치노로 아침을 먹으며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 고민했다.

트라파니의 유명한 염전을 가볼까 하는 마음은 하루에 한 대밖에 없는 버스에 비 오는 날씨로 포기하기로 했다.

여행 중, 비 오는 날 제일 하기 좋은 일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는 거다.

두세 시간 보내기 딱 좋다.

다행히 작은 도시 트라파니에 평점이 좋은 미술관이 하나 있었다.

45분을 걸어가야 했지만 딱히 갈 곳도 할 것도 없는데 걷는 일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빗길을 뚫고 걸었다.

50유로를 거슬러 줄 돈이 없어 잔돈을 만들어와야 했던 미술관은 제법 볼 게 많았다.

드로잉연습이나 할 겸 따라 그리기를 몇 개 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동양인 여자가 그림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있으니 신기한지 관리인들이 내 주변을 서성이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호의가 가득 담긴 미소를 보내준다.

내가 그림 그리기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뭐랄까?

사람들 사이로 다리가 하나 놓인 기분이다.

말이 필요 없이 건너갔다 건너올 수 있는 다리.

미술관을 나오니 그 사이 비가 그쳐 있었다.

숙소 근처 바닷가까지 다시 걸었다.

얼추 일몰시간이었다.

구름이 많아 해는 구름 속으로 숨어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 순간 아주 멋진 장면을 보여주었다.

종일 구름 속에 갇혀 있던 에리체는 해가 질 무렵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식당은 7시가 넘어야 문을 열고 애매하게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던 나는 숙소로 일찍 들어왔다.

포크와 나이프를 넣어 준 종이가 질감이 좋아 가져온 것으로 바닷가 산책로를 만들고 그냥 이것저것 해보기.

심심하면 사람은 재미있는 놀이를 찾기 마련인가 보다. 한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하루가 꽉 차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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