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오후 늦게 출발하는 비행기라 숙소에서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짐을 맡긴 다음 일요일의 카타니아를 즐길 생각이었다.
숙소 옆 공원에서 열리는 벼룩시장도 구경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거리 풍경도 보고 몇 가지 쇼핑도 할 예정이었다.
점심으로 안 먹어 본 맛있는 것을 먹고 마지막 와인도 한 잔 하고 커피와 바삭한 크로와상도 한 번 더 먹고 어디서 그림 하나를 더 그리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나가기 전 남편과 카톡을 했다.
밖에 나갔다가 숙소에 3시쯤 돌아와 3시 반쯤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고 비행기 출발시간은 오후 7시 20분이라고.
남편이 ”비행시간 확인?” 하고 물어왔다.
나는 속으로 농담해? 하는 마음으로
”뭘? 17시20분? “ 이라고 답했다.
물론 나는 내가 비행시간을 17시20분이라고 남편에게 알려준 줄 알았다.
그런데 뭘 확인하라는 말이냐, 라는 책망의 뉘앙스를 실어서 한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앞서 보낸 문자를 확인하는데 내가 7시 20분이라고 문자를 보낸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응? 뭐지? 잠깐 지금 내가 시간을 착각하고 있었나?
이때부터 나의 무의식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되었다.
남편은 17시 20분이면 오후 5시 20분인데 19시 20분 비행기란 뜻인지 비행시간이 7시간 20분이 걸린다는 뜻인지 그게 아니고 비행기가 17시 20분 비행기라는 뜻인지 다시 물어봤다.
문득 과거의 나의 행적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내가 또
17시 20분을 7시 20분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 번 비행시간을 착각해 비행기를 놓칠 뻔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기가 막힌 우연으로 위험을 피해 가고는 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 실수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남편이었다.
물론 나는 지나칠 정도로 일찍 공항에 도착할 생각이었다.
아마 라스트콜 직전에 비행기를 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마음 조리며 뛰어다녔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는 남편에게 몹시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크로와상과 카푸치노를 마시고 거리구경을 하고 쇼핑을 하고 벼룩시징을 구경하고 맛이 궁금했던 피스타치오새우 파스타와 와인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징어튀김도 먹고 숙소로 돌아와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에는 3시도 전에 도착했다.
내가 탈 비행기를 확인하다 깨달았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19시 20분, 오후 7시 20분에 출발하는 게 맞았다.
여행 내내 나는 생각만 나면 비행시간과 날짜를 확인하고는 했다.
이동이 많고 중간에 비행기도 3번이나 탔어야 해서 매 번 비행출발 시간에 집중해야 했다.
숙소 예약도 많아서 날짜가 겹치지 않는지 2023년이 맞는지 혹시 2024년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습관적으로 확인하고는 했다.
다 한 번씩 했던 실수들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출발시간이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는데 그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내 확신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평소 얼마나 내가 비슷한 실수를 많이 했으면 남편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흔들릴 수가 있을까?
남편이 물어봤을 때 비행시간을 한 번 더 확인했으면 되었을 것을 나는 당연히 이번에도 내가 실수한 거라고 믿어 버렸다.
하…할 말이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 전례가 있어 남편의 신뢰는 커녕 스스로도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무슨 말을 하랴.
이제 비행기만 무사히 나를 목적지까지 잘 태워다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