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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Oct 08. 2020

가난에 대해 생각하다

여행이야기 - 터키


성을 두고 앞에는 아브라함의 성지가, 뒤에는 아브라함의 신도 구원하지 못한 가난한 산동네가 있었다.  
호기심 많은 여행객이 아니라면 이 산동네를 찾아올 일이 없다.
볼 것도 없거니와 좁고 인적 드문 골목길을 다니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객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거친 아이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위험요소이기도했다.
내가 묵고 있던 호텔 사장은 절대  성 뒤로는 올라가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그리로 향했다. 여행자의 호기심이라고 해두자.
 
가난한 나라를 여행할 때 여행자는 어떤 시선을 유지해야 할까? 고민이 될 때가 있다.
가난은 아름답지도 낭만적이지도 감상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가난은 불편하고 고되고 퍽퍽한 삶의 현실일 뿐이다.
가난해서 가진 것 없고 남루한 살림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고 흘깃 바라본 인상으로 뭔가 인간적이고
사람 냄새가 남아 있는 무언가를 느꼈다고 믿는 여행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격은 그들의 삶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동참할 수 있는 사람에게나 겨우 주어지는 것이다. 가난을 구경하는 것처럼 무례하고 오만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니 이도 저도 아니었던 나는 참으로 어정쩡한 자세로 여행객이란 아무도 없는 동네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다.
동네 꼬마 녀석들은 역시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놀리고 도망치고 쓰레기 봉지를 던지고 페트병을 던지고 급기야는 신발 한 짝까지 벗어던진 녀석도 있었다.
처음엔 무시했다가 다음엔 화가 났고 마지막으론 이해했다.
자기들 동네에 찾아온 낯선 여행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약간의 적대감이 깔린 거부감.
아이들이 십 대 중후반이었으면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을 것 같다.
다행히 내가 만난 아이들은 어린아이들 뿐이었고 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것으로 접근을 했다.
'칼레 네레데? '(성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성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아는 것을 알려주려고 나섰다.
난 고마워하며 감사의 표시를 하고 아이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가는 척하다 다시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만나면 다시 길을 묻기를 반복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볐다.
그러다가 만났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녀석들은 내가 아직도 성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매는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와 내 손을 끌고 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대부분은 착했다.

작은 소란을 일으키며 다니는 동양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집 앞에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던 여인들을 보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메르하바?"
그러면 그 여인들은 반갑고 기쁜 웃음을 지으며 바닥에 자리를 내주고 앉으라고 권했다.
 
"이리 좀 와 봐요. 여기 앉아요. 어디서 왔어요? 이름은 뭔가요?"
 
"얘야, 들어가서 물 한 병 가지고 와라."
"마셔요. 오늘 날씨가 정말 더워요. 마시고 남은 물은 가져가요. 아니 괜찮아요. 그냥 가져가요."
 
"우리 집에 가요. 응? 잠깐 들어와요."
"얘야, 손님 오셨다. 얼른 쿠션과 방석을 꺼내 오려무나. 첫 째 너는 차를 끓이고 둘째 너는 과자를 가져오렴.'
"아가야, 어디 있니? 손님이 오셨어. 나와서 인사하렴."
 
한 집에선 물을 얻어 마셨고 한 집에선 물병을 받았고 또 한 집에선 초대를 받아 들어갔다.
초대를 받아 들어간 집엔 두 딸과 며느리, 그리고 딸들의 어머니가 있었고 그녀의 손자들이 있었다.
인사를 시키고 차를 끓이고 과자를 꺼내오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내 얘기를 들으며 신기해하고 놀라워하고.
그렇게 차이를 한 잔 두 잔 석 잔을 마시는 사이 어느 집에 동양 여자가 와 있대, 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는지
온 동네 여자들이 한 번씩 문을 열고 내 얼굴을 구경한 다음 돌아갔다.
 
"비행기 값이 그렇게 비싼가요? 아휴 당신은 부자로군요.'
"결혼했어요? 그럼 아이는 어떻게 하고 왔어요?"
"아이가 없어요? 이런!"
"내 손자예요. 아브라함이지요. 애는 내 며느리고. 이제 스물셋이에요."

스물셋이라고 했던 며느리는 너무 예뻤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한사코 사양했고 난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슬쩍 내 앞으로 밀었다. 아이의 사진을 찍어 보여주자 기뻐하던 그녀의 얼굴은 신장위구르 초원에서 만났던 여인의 얼굴과 닮아있었다.
 
"당신은 이렇게 예쁜 손자가 있으니 나보다 훨씬 부자로군요?"
 
어머니는 웃었고 그녀의 며느리도 웃었고 딸들도 웃었다.
 
"벌써 가시려고요? 애야, 남은 과자를 싸서 손님에게 드려라.'
"아니, 그러지 말고 가져가요. 내 딸이 만든 거에요."
 
골목길을 빠져나와 성으로 왔고 다시 성을 내려가 아브라함의 성지로 갔다.
가방 안에 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삶이 가난한 것과 마음이 가난한 것,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가난과 견딜 수 없는 가난,
아이들이 동심이 지켜지는 가난과 아이들의 눈에서 꿈을 뺏어가는 가난,
베풀 수 있는 가난과 뺏어야 하는 가난.
그리고 희망이 있는 가난과 미래가 없는 가난...
 
그 날 나는 세상의 수많은 가난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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