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순영 Jan 22. 2021

꽃게찜 먹던 날

사노라면


월세방에 두 시동생을 데리고 살던 결혼 초에는 빠듯한 생활비로 자주 재래시장을 찾았다.

콩나물과 두부  모를 사면 1500원이었던 때였다.
한결같이 사던 품목은 콩나물, 두부, 어묵, 미역줄기 같은 것들이었지만 가끔은 갖은 해물 재료를 담아 5000원에 파는 해물탕 재료도  와서 끓여 먹고  마리에 1000 하는 동태 오기도 했다.

일요일 저녁은 늘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한 근을 사면 네 명이 맛있게 먹었다.
언제였던가 시장에 갔는데 자주 가던 생선가게에서 꽃게를 싸게 팔고 있었다.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크기가 들쭉날쭉한 수게였는데 쪄 먹는 데는 수게가 낫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을 듣고 덜컥 세 마리나 사고 말았다.
내 손으로 꽃게를 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꽃게를 사지 않았으니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특별한 별식을 남편과 함께 먹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르게 해서 먹는 법을 몰랐는지 하여간 나는 그 꽃게 세 마리를 한 번에 쪄서 남편과 둘이 먹었다.
어쩐 일인지 두 시동생은 집에 없었다.
그날 우리 부부는 꽃게찜을 맛있게 먹었다. 나긋나긋하면서 하얀 꽃게살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그전에 꽃게찜을 먹었던 기억이 없는 걸 보아 그 날이 내가 처음으로 꽃게찜을 먹은 날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먹으며 행복했는지 살면서 나는 종종 꽃게의 희고 부드러운 살의 식감과 다디단 맛을 떠올리며 웃었다

사는 게 빠듯하고 아슬아슬했던 시절에도 늘 한쪽에는 햇살이 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으면 문득 눈앞이 환하다.

며칠 전 시장에 가니 생선가게마다 꽃게를 가져다 놓은 것이 눈에 띄였다.
세 마리에 만 원에 팔고 있었다. 문득 오래전 먹었던 꽃게찜 생각이 났다.
늘 사던 것을 사고 나오면서 봐 두었던 가게에서 제일 큰 산 게로 3마리를 집었다.
찜으로 먹을 거라면 살이 많은 수게가 낫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집 꽃게가 유독 커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5000원 더 비쌌다.  
비싼 게 좀 더 맛있겠지 아무렴, 나는 또 중얼거렸다.

집에 오자마자 제일 큰 꽃게 한 마리를 손질해서 된장을 푼 물에 무를 받침대로 삼아 25분 쪘다.

저녁을 먹고 온다는 남편 말에 혼자 먹을 생각이었다.
꽃게 향이 집안에 퍼지는 동안 나는 또 예전에 먹었던 꽃게의 달큼한 맛을 떠올렸다.

그 후에도 꽃게는 많이 먹어봤는데 기억은 늘 최초의 순간을 소환한다. 신기한 일이다.

남은 두 마리는 다음 날 쪄서 남편과 둘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공원을 돌며 꽃게 얘기를 했다.
예전에 먹었던 꽃게와 어제와 오늘 먹었던 꽃게 얘기를 하며 웃었다.

살아오면서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많았는데 집에서 남편과 둘이 앉아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옹기종기 아이들까지 있으면 얼마나 따듯할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괜찮다. 둘이어도 족하다.

삶이 온통 환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한쪽이라도 빛이 들어오면 삶은 충분히 따듯하다.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으로도 충분히 눈부시다.

사는 게 다 그렇다고 문득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응, 그런 것 같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