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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Feb 25. 2021

남편의 마음을 먹었다

사노라면


남편과 연애할 때 학생이었던 우리는 둘 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다.
우리는 매주 한 번 이상 만났는데 나는 용돈을 쪼개 오천 원쯤 되는 돈을 만들어 나가고는 했다.
그 당시 남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석재공장이 제법 잘 되고 있던 때라 그나마 남편은 나보다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데이트 비용은 거의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우리는 주로 남편의 대학이 있던 신촌에서 데이트를 했다.
밥은 학교 식당을 이용했고 커피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셨다.
남편이 다니는 대학 교정을 같이 걸었고 벤치에 앉아 대화를 했다.
신촌과 이대역 주변을 자주 걸었고 골목 저렴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본인이 밥을 사면 차는 내가 사도록 배려했는데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자판기에서 막 나온 뜨거운 밀크커피였다.
가끔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주로 걸었다. 우린 걸으면서 얘기하고 얘기하며 걸었다.
뭘 먹어도 뭘 해도 배부르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끔은 대중교통을 타고 근교에 나가 데이트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 둘 다 그때 데이트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나 싶다.

언젠가 한 번은 같이 소래포구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오전에 만나 아침을 먹으려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매운탕만 파는 식당이었는지 주인 여자가 권하는
제일 싼 것이  2만 원짜리였다.
의심할 것 없는 바가지요금이었다.
누가 봐도 연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함께 들어왔으니 설마 안 먹고 나가지는 않겠지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 아침 한 끼에 2만 원을 쓰고 나면 우리는 종일 걷기만 해야 할 터였다.
나는 주인 여자가 이미 컵에 물까지 따라 준 상황이었음에도 다른 것을 먹자며 가게를 나왔다.
남편은 당황해하고 그런 상황을 난감해했다.
그냥 먹자는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럴 수 없었다.
주인 여자는 하루 마수걸이가 그냥 나가면 종일 재수가 없다며 우리 뒤로 소금을 뿌리며 성을 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창피는 잠깐이지만 우리의 하루는 길게 남아 있었다.
그 가게를 나와 우리가 뭘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못 먹은 매운탕보다 더 맛있게 더 만족스럽게 먹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 후에도 한 번 더 소래포구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여전한 바가지요금에 기분만 상해 돌아 나왔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소래포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군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군산까지 왔으니 회를 먹자며 전망이 좋아 보이는 회 센터 건물로 올라갔다.
메뉴판을 보는데 연애할 때 소래포구가 떠올랐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 우리의 상황에서 한 끼 식사로 지불하기에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나는 아주 잠시 고민했지만 다른 곳에 가자고 일어났다.
남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떤 남자가 그런 상황에서 표정이 좋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때 나는 그 비싼 회를 맛있게 먹을 수 없었다.
어디서 뭘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과 같이 여행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분식집에서 라면을 시켜 먹어도 좋았다.
그날 우리는 비싸지 않지만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었다.

지난 토요일 속초로 놀러 갔다.
이사 온 후 집에서 두 시간 정도면 동해바다에 닿는다.
작년 2월엔 낙산사를 보고 한계령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속초 바다를 보고 영랑호 주변을 걷고 속초 중앙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닭강정을 하나 사서 돌아올 생각이었다.
날이 너무 좋았다.
빛은 따듯했고 바람은 온화했고 하늘은 맑았다.
오랜만에 다양한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동해바다를 보았다.
대신 오전에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영랑호 주변을 걷는 것은 다음을 기약했다.
그래도 즐거웠고 점심은 뭘 먹어도 좋았다.
지난번처럼 시장에서 칼국수 같은 것을 먹자고 할 참이었다.
남편은 회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실은 내게 회를 사주고 싶어 했다.
남편은 나를 중앙시장 지하 회 센터에 있는 한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어느새 미리 검색해 둔 곳이었다.
여주인은 둘이 먹기에 사이즈가 딱 좋은 농어가 있다며 추천해 줬다.
농어 한 마리가 나오는 2인 상차림이 7만 원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거 먹으러 가자고 남편의 손을 잡아끌지 않았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내게 회를 사주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먹기로 했다.
이제는 이보다 더 비싼 것도 원하면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찰지고 싱싱한 농어 한 마리가 다른 것들과 함께 차려졌다.
농어는 맛있었지만 내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며 뿌듯해하는 남편의 마음이 더 맛있었다.
농어 한 마리를 온전하게 다 먹어 본 적이 전에 있었던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매운탕까지 알뜰하게 먹고 일어났다.
먹으면서 소래포구와 군산의 기억을 소환해 내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었고 이제 우리를 위해 가끔 호사를 누리기도 하는 현실에 감사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삶에서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리 둘이 같이 경험한 가난의 기억이 있다.
다만 그 가난이 내 마음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나는 우리의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아프지 않다.
그러나 남편은 나와 달랐을 것이다.
남편은 가끔 쓰라리고 씁쓸했을 것이다.
돈이 없어 마음이 가난했던 적은 없지만 돈이 없어 삶이 민망하고 난처하게 될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아팠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때의 가난이 우리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다.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거나 힘든 삶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남의 집에서 살고 노후를 대비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족하다.
비싸서 못 먹고 나왔던 기억과 비싸도 기꺼이 먹고 나온 기억이 모두 있으니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요즘은 여행의 일부를 그림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농어를 그리려고 했지만 그냥 물고기를 하나 그리고 물고기를 하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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