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시아버님이 고른 땅은 살아있는 동안 살기에 좋은 땅이 아니라 죽어서 살기 좋은 땅이었다.
시아버님은 애초에 살아있는 동안 살 땅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시아버님의 관심은 언제나 죽어서 살 땅에 있었다.
그러나 소위 명당이라는 곳은 이미 주인이 있었고 명당 비스무리한 땅도 주인이 있었다.
사고 싶은 땅은 주인이 팔지 않았고 팔겠다는 땅은 너무 비쌌다.
IMF 때 운영하시던 석재공장이 빚더미에 주저앉은 후 시아버님은 가진 돈이 없었다.
나는 시아버님이 대출을 받아 화성에 작은 임대 아파트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그곳이 시부모님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리라 짐작했다.
아파트는 작았지만 정남향에 앞이 트여 두 분이 사시기에 쾌적하고 따듯한 곳이었다.
매주 찾아갈 정도의 거리여서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살기에 괜찮겠다 싶었다.
남편은 몇 년 후 남은 대출금을 갚고 아파트를 사 드렸다.
어느 날 시아버님이 경북 고향 땅 근처에 사고 싶은 땅 얘기를 하셨고 그즈음 시어머님이 초기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시아버님은 가족묘를 만들고 싶어 했고 몇 백 평의 땅이면 충분했지만 3천 평이 넘는 밭을 같이 사야 했다.
우리가 땅을 사 드리자 시아버님은 밭 위쪽 대지에 창고를 짓고 방을 하나 만들어 시어머님을 데리고 내려가셨다.
남은 땅에는 호두나무를 심으셨다.
시어머님의 상태가 조금씩 안 좋아지고 언제까지 창고에 살게 할 수가 없어 3년 후 창고 옆에 작은 집을 지어 드렸다.
시아버님은 산 깊은 곳에 있는 증조할머니 묘를 옮겨 오시더니 나중에는 큰 댁의 제사까지 가져오셨다.
큰 어머님이 나이가 들고 제사상을 차릴 며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둘째인 시아버님에게 온 것이라고는 하나 제사는 시아버님이 오래전부터 간절히 소망하던 것이었다.
큰 어머님은 한 번도 제사에 정성을 기울였던 적이 없고 시아버님은 늘 그걸 못마땅해하셨다.
그렇게 시아버님의 오랜 염원이 하나씩 이뤄지는 동안 시어머님의 치매는 꾸준히 진행되어 갔다.
심어 놓은 호두나무는 제대로 관리가 안 되기 시작했고 시아버님은 집안일에 밭일까지 해야 했다.
그럼에도 제사는 시아버님의 손에 빠짐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가려고 하지만 내가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건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구정뿐이다.
제사 횟수를 줄였다지만 명절 빼고는 먼 곳까지 찾아오는 친척도 없어 혼자 준비하고 혼자 지내야 한다.
나는 상상해 본다.
이젠 내 이름도 기억 못 하시는 시어머님이 거실 의자에 앉아 계시는 동안 아버님 혼자 제사상을 차리고 촛불을 켜고 절을 하고 음복을 하고 제사상 앞에 물끄러미 앉아 계시는 모습을.
찾아오는 친척 한 명 없이 혼자서 지내는 제사의
그 허전하고 쓸쓸한 장면을.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몇 날 며칠 어머님과 둘이 먹는 모습을.
제사를 지낼 때 시아버님의 마음에 죽은 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왜 없을까?
제사라는 형식에 담겨 있는 의미와 가치를 내가 왜 모를까?
처음과 달리 아버님 혼자 준비하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점점 단출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시아버님 혼자 준비하는 제사가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혼자 제사를 지내는 시아버님의 모습은 나를 서글프게 만든다.
시아버님이 제사에 쏟는 관심은 현재의 삶에 닿아 있지 않다.
죽은 자에게 향하는 애틋함이 시어머님에게는 닿지 않는다.
호두나무에 가졌던 기대는 접은 지 오래고 ‘당신은 그냥 가만히 있어라. 시아버님이 시어머님께 소리칠 때 남아있는 건 미움과 실망뿐이다.
여전한 삶이 남아 있음에도 시아버님은 절반쯤 죽음과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자식이 내게도 이렇게 해 주리라는 바람으로 제사를 지내고, 자신은 물론 자식과 자식의 자식까지 묻힐 자리를 생전에 마련했다는 믿음으로
이제 이 생에 할 일은 다 끝나고 죽음의 날들을 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프다.
자식의 삶은 시아버님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자식이 없는 우리 부부는 묘지도 제사도 원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시부모님의 제사를 지내겠지만 그 형식도 내용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다만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시부모님을 찾아가고 때가 되면 같이 살고 할 수 있는 한 내 정성과 마음을 다하겠다.
돌아가신 다음 제사상에 음식 하나 더 올리기보다 지금 하나라도 더 차려 드리겠다.
시어머님의 몸을 한 번 더 씻어 드리고 한 번이라도 더 같이 산책을 하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삶이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저 너머 죽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 앞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요즘 가수 이승윤의 노래에 빠져있다.
그의 노랫말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보단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번 더 불러볼래.
나는 다만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