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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Mar 02. 2021

나는 다만 그렇게 살고 싶다

사노라면

시아버님이 고른 땅은 살아있는 동안 살기에 좋은 땅이 아니라 죽어서 살기 좋은 땅이었다.

시아버님은 애초에 살아있는 동안  땅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시아버님의 관심은 언제나 죽어서  에 있었다.
그러나 소위 명당이라는 곳은 이미 주인이 있었고 명당 비스무리한 땅도 주인이 있었다.
사고 싶은 땅은 주인이 팔지 않았고 팔겠다는 땅은 너무 비쌌다.
IMF 때 운영하시던 석재공장이 빚더미에 주저앉은  시아버님은 가진 돈이 없었다.

나는 시아버님이 대출을 받아 화성에 작은 임대 아파트로 들어간다고 했을  그곳이 시부모님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리라 짐작했다.
아파트는 작았지만 정남향에 앞이 트여  분이 사시기에 쾌적하고 따듯한 곳이었다.
매주 찾아갈 정도의 거리여서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살기에 괜찮겠다 싶었다.
남편은    남은 대출금을 갚고 아파트를  드렸다.

어느  시아버님이 경북 고향  근처에 사고 싶은  얘기를 하셨고 그즈음 시어머님이 초기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시아버님은 가족묘를 만들고 싶어 했고  백 평의 땅이면 충분했지만 3천 평이 넘는 밭을 같이 사야 했다.
우리가 땅을  드리자 시아버님은  위쪽 대지에 창고를 짓고 방을 하나 만들어 시어머님을 데리고 내려가셨다.
남은 땅에는 호두나무를 심으셨다.
시어머님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언제까지 창고에 살게  수가 없어 3  창고 옆에 작은 집을 지어 드렸다.
시아버님은  깊은 곳에 있는 증조할머니 묘를 옮겨 오시더니 나중에는  댁의 제사까지 가져오셨다.
 어머님이 나이가 들고 제사상을 차릴 며느리가 없어 어쩔  없이 둘째인 시아버님에게  것이라고는 하나 제사는 시아버님이 오래전부터 간절히 소망하던 것이었다.
 어머님은  번도 제사에 정성을 기울였던 적이 없고 시아버님은  그걸 못마땅해하셨다.
그렇게 시아버님의 오랜 염원이 하나씩 이뤄지는 동안 시어머님의 치매는 꾸준히 진행되어 갔다.

심어 놓은 호두나무는 제대로 관리가 안 되기 시작했고 시아버님은 집안일에 밭일까지 해야 했다.

그럼에도 제사는 시아버님의 손에 빠짐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달에  번씩 내려가려고 하지만 내가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년에   추석과 구정뿐이다.
제사 횟수를 줄였다지만 명절 빼고는 먼 곳까지 찾아오는 친척도 없어 혼자 준비하고 혼자 지내야 한다.

나는 상상해 본다.
이젠  이름도 기억 못 하시는 시어머님이 거실 의자에 앉아 계시는 동안 아버님 혼자 제사상을 차리고 촛불을 켜고 절을 하고 음복을 하고 제사상 앞에 물끄러미 앉아 계시는 모습을.

찾아오는 친척   없이 혼자서 지내는 제사의 
 허전하고 쓸쓸한 장면을.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몇 날 며칠 어머님과 둘이 먹는 모습을.

제사를 지낼  시아버님의 마음에 죽은 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없을까?
제사라는 형식에 담겨 있는 의미와 가치를 내가  모를까?
처음과 달리 아버님 혼자 준비하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점점 단출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시아버님 혼자 준비하는 제사가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 아닐  있다.
그럼에도 혼자 제사를 지내는 시아버님의 모습은 나를 서글프게 만든다.

시아버님이 제사에 쏟는 관심 현재의 삶에 닿아 있지 다.

죽은 자에게 향하는 애틋함이 시어머님에게는 닿지 않는다.

호두나무에 가졌던 기대는 접은 지 오래고 ‘당신은 그냥 가만히 있어라. 시아버님이 시어머님께 소리칠 때 남아있는 건 미움과 실망뿐이다.
여전한 삶이 남아 있음에도 시아버님은 절반쯤 죽음과 함께 살고 있는  같다.
나중에 자식이 내게도 이렇게  주리라는 바람으로 제사를 지내고, 자신은 물론 자식과 자식의 자식까지 묻힐 자리를 생전에 마련했다는 믿음으로
이제  생에  일은  끝나고 죽음의 날들을 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프다.

자식의 삶은 시아버님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자식이 없는 우리 부부는 묘지도 제사도 원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시부모님의 제사를 지내겠지만  형식도 내용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다만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시부모님을 찾아가고 때가 되면 같이 살고   있는   정성과 마음을 다하겠다.
돌아가신 다음 제사상에 음식 하나  올리기보다 지금 하나라도  차려 드리겠다.

시어머님의 몸을 한 번 더 씻어 드리고 한 번이라도 더 같이 산책을 하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삶이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너머 죽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  앞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요즘 가수 이승윤의 노래에 빠져있다.

그의 노랫말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보단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번  불러볼래.

나는 다만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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