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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May 06. 2023

아빠의 유언

사노라면

아빠다우셨다.

웃으며 죽음을 얘기하는 모습은 평생 보아온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세는 꼿꼿했고 목소리는 우렁찼고 여전히 총기가 넘치셨다.

날은 따듯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봉분을 없애고 평장을 한 후 비석을 세운 조상들의 옆자리는 단정하게 비어있었다.

크지 않았지만 부모님 두 분의 자리로 옹색하지 않았다.

다섯 딸들 중에 넷이 사위와 함께 모였다.

아빠는 웃으면서 아빠와 엄마가 생각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해주길 바라는지 말씀하시는 아빠의 모습은

남아있는 날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했다.

무겁지도 어둡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지극히 평온했다.

으레 죽음은 이렇게 이야기되는 것이 맞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아빠가 딸들과 사위들 앞에서 죽음을 얘기하는 동안 엄마는 무덤 주변 여기저기 고개를 들고 있는 고사리를 꺾느라 분주하셨다.

엄마는 할 일이 보이면 몸이 움직이는 분이다.

누구를 시키거나 같이 하는 것보다 혼자 무던하게 하는 쪽이다.

우리는 아빠의 말씀을 유언으로 들었다. 엄마는 아빠와 생각이 같아서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터였다.

괜한 시간에 고사리라도 꺾고 있는 편이 낫지.

얼마나 엄마다운 모습인지.


자식이 없는 우리 부부는 내 부모가 남기려는 것조차 관심이 없다.

살면서 어느 순간 우리의 마지막 장면을 결정하리라.

나는 약간의 글과 몇 개의 그림을 누군가의 옆에 남기고 싶지만 그 조차 욕심이라 생각이 들면 버릴 것이다.


펜션에 모여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을 때 아빠는 아파도 수술을 받지 않을 것이며 아빠가 아프면 엄마가 엄마가 아프면 아빠가 간호하겠지만 그 조차 여의치 않으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갈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돈은 이미 마련하여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노라 덧붙이셨다.

연명치료는 물론 받지 않겠다 하셨다.

팔순인지도 모르고 요양원에서 팔순을 맞으신 나의 시어머님은 자식들 대신 직원들의 절을 받으셨다.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머님은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부모님의 뜻을 따를 것이다.

애통한 마음은 남은 자식의 몫이지만 죽음의 끝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뤄지는 것을 나 역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에 남동생이 전화를 했다.

남동생은 어떤 말이 오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남동생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아빠를 불편해하는 동생은 몇 번을 망설이다 따라오지 않았다.

아빠 엄마의 남은 날들에 정신지체 막내아들은 여전한숙제다.

모든 걸 비우고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살고 싶다 해도 아픈 자식이 있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동생의 삶은 아빠 엄마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혼자 살게 되든 누군가의 보호를 받게 되든 결국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건 또 그것대로 흘러가게 되리라.


부모님은 오랜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해하셨다.

많이 웃으셨고 많이 고마워하셨다.

우리 모두 그랬다.

나중에 우리는 이날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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