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여행기
남편과 카톡을 하던 중이었다.
남편은 내게 힘을 실어주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글마다 망쳤다 못 그렸다는 표현은 자제했으면…
남들이 불편해할 듯.
마치 아니라는 말을 써줘야 하는 의무감이 생길 듯“
이란 문자를 보내왔다.
순간 뜨끔했다.
실은 그 부분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들으니 비로소 확실해졌다.
지금 나의 뇌지도를 그리면 50%는 그림에 관련된 것,
30%는 여행과 내 컨디션, 나머지는 기타 등등이다.
남편은 언제나 0순위기 때문에 바탕에 깔려 있으므로 뺀다.
여행보다 그림에 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도 숙소를 찾고 목적지를 찾아다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길을 건널 때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끊고 주위를 살펴야 할 정도다.
남편이 가장 못 믿어하는 부분이라 나는 과하게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틈만 생기면 오로지 한 생각뿐이다.
사람은 현재 자기한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한다.
B에 대한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관심사가 A에 가 있다면 자기도 모르게 A를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남편의 지적은 조금 다른 지점을 건드린다.
피로감이다.
나정도의 그림도 못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의 말들은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것이다.
그 정도면 잘 그리는데 왜 자꾸 못 그렸다는 거야? 하는 짜증도 날 법하다.
속마음은 재수 없다고 나를 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천지삐까리여도 나만큼만 그려도 좋겠다는 시람 역시 천지삐까리일 것이다.
나를 오래 지켜본 지인들은 겸손이 지나치다 생각할 수도 있고 매 번 응원하기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이건 마치 슬프고 기운 없어하는 사람에게 처음 몇 번은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반복되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안 보고 안 만나도 되는 관계라면 간단한데 사회관계망으로 연결된 관계 속에서는 그러기도 쉽지 않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피로감을 느끼게 되어 있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여행이야기 끝에 오늘도 그림 망침, 이라던가 망한 그림, 이런 식의 멘트를 달게 되면 틀림없이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그림에 관한 고민은 내게 속한 것으로 두고 인스타처럼 공개된 연결망에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옳다.
말하지 않아도 좋은 그림은 마음을 끌고 그렇지 않은 그림은 스쳐간다.
나는 그저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면 될 일이다.
남편의 지적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너무 내 생각만 했다.
튀니스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처음으로 바람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제 겨우 평년 온도로 돌아온 것이다.
금요일에 기온도 선선해지자 사람들이 너도 나도 빆으로 나온 모양이다.
끔찍한 교통체증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차들과 광장에서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대조가 오늘따라 더 선명하다.
튀니스로 돌아오면 제일 하고 싶었던 일.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기.
오늘 그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