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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무게

튀니지 여행기

by 신순영


튀니지 수수의 마지막 날이다.

수스를 거점으로 해서 다녀올 수 있는 근교에 엘젬원형경기장, 캐로완(카이로우완), 모나스티르가 있다.

앞의 두 곳은 루아지를 타고 다녀왔고 모나스티르는 버스를 타고 가서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덕분에 궁금한 교통수단은 다 이용해 본 셈이다.


오늘은 유독 덥고 맑은 날이었다.

튀니지 여행의 거의 끝에 왔는데 오늘은 유독 그림도 안 그려지고 마음에 어지러운 날이었다.

종일 쌤이 내준 과제, 초월하는 그림에 대해 고민을 했다.

답은 모르겠고 날씨는 너무 뜨겁고, 나는 지금 여행 중인데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해서 잠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요즘 튀니지에서 가장 맛있게 먹고 있는 음식은 석류다.

석류가 시지 않고 단데 즙이 많아 갈증해소에 좋다.

석류 하나를 잘라 달라고 한 후 석류알을 입에 털어 넣으며 수스의 시장을 둘러보고 막 광장 쪽으로 빠져나왔는데 갑자기 웅성웅성하더니 여기저기서 노점상인들이 뛰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불법노점을 단속하는 경찰차가 뜬것이다.

민트티를 팔던 상인은 작은 탁자를 들고뛰고 리어카로 장사를 하던 사람은 리어카를 끌고 재삐르게 사라졌다.

다들 어찌나 빠르게 어디론가 사라지는지 깜짝 놀랐다.

한 두 번의 일이 아니어서 그들만의 루트가 있는 것 같았다.

근데 하필 바닥에 긴 천을 깔고 옷을 팔던 상인 한 명이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천을 끌고 끙끙대며 도망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 남자의 헉헉대는 숨소리가 내 귀 옆에서 들려 내 숨까지 차는 것 같았다.

경찰 한 명이 상인이 팔던 옷을 한 아름 안고 경찰차 뒤에 실었다.

순간 나는 이 상인이 오늘 재수 없게 찍힌 사람인 걸 알았다.

다른 상인들도 붙잡으려고 하면 붙잡을 수 있었는데 그냥 도망가게 두고 뭐라도 실적이 필요하니 부피가 큰 옷을 한 아름 실은 모양새였다.

옷을 다 뺏어가면 어쩌나 했는데 한 아름 안고 간 것이 끝이었다.

잠시 나는 어떤 신사가 그 상인 앞에 나타나

“오늘 당신은 운이 매우 없었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될 것이오.

이 돈으로 가게를 차려보시오.” 하며 거액의 수표를 주는 상상을 했다.


경찰차가 사라지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다시 상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해진 각자의 영역에 다시 물건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금방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광장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잠시 치열한 삶의 한 순간을 목격한 나는 하루종일 했던 고민들이 이만큼 치열했나 생각해 봤다.

살기 위한 치열함의 무게를 나의 고민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나의 고민에도 얼마간 무게가 있기를 바라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라도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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