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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소묘 Jul 30. 2024

급훈

예술과 우리 사이

 급훈을 정해야 했다. 


 고심 끝에 ‘예술을 즐기며 창의적으로 생활하기’라는 한 줄을 생각 해냈다. 여느 급훈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 해낸 나를 칭찬했다. 사실 급훈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뒤졌다.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조바심을 냈다.

 디자인과의 성격에 맞는 새로운 급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고민을 거듭하다 생각해 냈다. 꽤 만족하며 교실 입구 게시대에 걸어 두었다. 내심 학생들이 교실을 드나들며 누군가는 읽어보고 생활 속에서 고민과 실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생각 해낸 나를 칭찬했다. 

 “잘했어!.”

 스스로를 칭찬하기는 했지만 어느 누가 교실 앞에 붙은 급훈을 읽고 생활에서 실천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것은 그저 담임의 첫 숙제를 해냈을 뿐인 것이다. 


 “그래 잘했어!” 

 숙제를 해낸 나를 또 칭찬했다.

 급훈을 걸어놓은 후로 나는 그것이 사뭇 신경이 쓰였다. 조회와 종례를 오가며 읽고 또 읽었다. 복도를 지날 때면 눈에 들어 오는 그 말이 ‘너는 그래서 무엇을 실천하느냐’고 묻는 듯했다. 그러면 나는 그 물음에 답하듯 무언가라도 찾아내어‘예술을 즐기며 창의적으로 생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이전보다 미술관도 더 가보고, 영화도 더 자주 보려 하고, 공연도 더 찾아보곤 했다. 예술을 즐기려면 창의적으로 살려면 그런 곳들에 가야만 하지 않는가.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그렇게 시간을 쪼개고 가족들을 대동해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창의적인 하루를 보내기 위한 고군분투를 이어갔다. 멀리 다녀오면 다녀올수록 만족감은 컸다.     

 내가 만든 그 급훈은 사명감보다는 가볍고 의무감 정도의 무게가 되어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 다녀오고 혼자 즐기고 혼자 떠들어대며 조회 시간에 그 의무감을 실천했다.


 급훈이 주는 눈칫밥에 물릴 즈음이었다.


 4월 중순쯤 부터는 아침 조회 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떤 창의적인 하루를 보냈는가?’라는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전략을 바꾼 것이다. 학생들이 얼마의 예술적 작업을 진행하고 해결했는지 확인하고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일상을 묻는 질문인 것이다. 일상 속에서 얻은 영감을 함께 나누기 위한 질문이다. 처음에는 졸음이 몰려오는 이 아침 시간에 던져진 황당한 질문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하루 이틀 지나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모두의 하루는 늘 다채롭다. 

 새로운 게임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본 감상부터 점심시간 급식 메뉴에 대한 이야기, 하굣길 버스에서 일어난 이야기, 동생과 다툰 이야기, 엄마와 나누었던 이야기, 어젯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은 이유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예를 들면 비오는 날 흠뻑 젖어버린 운동화를 효과적으로 말리는 방법과 젖지 않는 운동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 오늘 아침 분명히 학교에 가지고 온 것 같은 점퍼가 왜 지금은 내 손에 없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 등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예술적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우리 생활과는 가까운 문제들이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의 하루에 나름의 창의적이거나 예술적인 단어를 섞어 가며 ‘교육적인 대화’로 만들기 위해 거든다. 디자인 재료와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디자인 문제 해결 발상에 얽힌 이야기,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망설일 겨를도 없이 명확하게 퇴짜를 맞아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정확히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동시에 외면 당하고 만다. 


하지만 또 다른 화젯거리로 전환하며 낄낄거리는 아침 시간이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아침이 우리의 생각을 깨우리라고 믿는다. 

 거대한 인류적 담론을 이야기하는 전시회를 찾아가도 좋겠지만 예술적 영감은 거기서만 있는 게 아니다. 반복되고 그저 가벼워 보이는 우리 일상 속에서 우리는 영감을 찾을 것이 틀림없다.


  ‘예술적, 창의적, 교훈적’ 이야기를 찾아 먼 길을 떠났던 나는 이제 조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사건을 비껴 선 관점으로 바라보려 하고,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며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영감을 받기 위해 감각을 넓게 열어 ‘ 창의적인 일상’을 살고자 애쓴다. 그렇게 작은 영감들을 조약돌처럼 모아 주머니 속에 잘 넣어두고 연신 만지작거리며 그 돌들을 작품으로 꺼내놓을 순간을 잠잠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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