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들에 대하여 01]
세상에는 제 몸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색을 가로채는 생물들이 있지만, 주차장에서 만나는 ‘파란색’은 되레 자신을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타인을 안심시킨다.
그 무해한 파란색이 늘 반갑다.
나는 주차에 유독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진중한 성격이라기보다는 타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싶은 소심함에 가깝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기둥 옆자리를 살핀다. 내 차의 우측면을 기둥이라는 든든한 벽에 붙여둘 수 있다면, 적어도 한쪽 면만큼은 누군가의 부주의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은 늘 운전자가 문을 여닫는 쪽이다. 그러니 옆 차의 조수석 문이 열릴 확률이 적은 기둥 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나름의 정밀한 통계와 적잖은 계산이 적용된 전략이다. 주차를 마친 뒤에도 나의 신경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내 차의 문 끝이 옆 차의 매끄러운 외벽에 닿아 작은 흠집이라도 낼까 봐, 숨을 죽이고 문을 연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적어도 이름 모를 이웃에게 예상치 못한 불쾌감을 얹어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차장은 언제나 나의 엄격한 기준을 비웃듯 만원이기 일쑤다. 기둥 옆자리가 없을 때, 나는 차들 사이의 좁은 틈을 살피며 일종의 ‘관상’을 살핀다. 양옆의 차들이 주차선을 얼마나 정직하게 지키고 있는지, 타이어의 각도가 뒤틀리지는 않았는지. 타인에 대한 배려의 두께를 주차선이라는 가느다란 경계 안에서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런 까다로운 검열마저 통과하지 못하는 날, 나의 시선이 닻을 내리는 곳이 있다.
바로 '문콕 방지 스펀지'를 떼지 않은 차 옆자리다.
왜 저런 투박한 것을 여태 달고 있느냐며 핀잔을 들었다.
길쭉한 육면체 모양의 파란 스펀지. 그것은 본래 새 차가 공장에서 출고될 때, 좁은 수송로에서 서로의 몸을 부딪치지 않기 위해 임시로 덧댄 소모품이다. 어떤 이는 차를 인도받자마자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것을 가차 없이 떼어내 버린다. 시간이 흐르면 접착제가 눌어붙어 처치가 곤란해진다고 혀를 차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 그 투박한 파란 육면체는 전혀 다른 농도의 고백으로 읽힌다.
그것은 세상에 내놓은 가장 낮고도 정중한 안부다.
“나는 당신의 차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내 차 또한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스펀지를 떼지 않고 방치한 이들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다정함이 박혀 있다. 끈적이는 자국이 남을지언정, 당장 내 옆에 주차할 낯선 이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그 고요한 고집. 혹은 미처 그것을 떼어낼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생을 꾸려가면서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기본값만큼은 기어코 지켜내고 있는 성실함.
나는 그 투박한 방치가 좋다.
매끈하게 잘 닦인 세련됨보다 파란색 스펀지가 붙어 있는 차 옆을 고를 때, 내 마음의 긴장은 비로소 눅눅함을 벗고 보송해진다.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려 잠시 그 옆을 서성인다. 오늘 처음 만난, 아마 평생 얼굴도 모를 그 차주에게 이름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의 문이 닿을까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그 조심스러움으로 서로의 세계를 지켜주는 다정한 이웃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파란 육면체를 찾아 그 곁에 내 차를 세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작별 인사를 건넨다. 당신의 다정함 덕분에 오늘이 안녕하다고.
말 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파란 스펀지 하나로 이어진 이 기묘한 유대감 속에서 나는 오늘도 작은 다정함의 증거를 채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