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m의 낮은 환대

[다정한 것들에 대하여 02]

by 도시소묘
관계를 측정하는 단위가 있다면 그것은 ‘높이’가 아닐까.


흔히 사람들은 성공의 높이나 건물의 높이를 말하지만, 정작 마음이 오가는 높이는 아주 낮은 곳에 형성되곤 한다. 어둠이 내린 도심의 밤, 식당의 유리창마다 눅눅한 김이 서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층층이 쌓여 소음의 벽을 이룬다.


회식이라는 명목하에 모인 자리,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겹쳐지는 술잔의 비명 속에서 나는 종종 사람들의 손목 각도를 관찰한다. 관계의 무게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잔을 맞대기 위해 팔을 뻗는 그 짧은 찰나에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맥주잔을 부딪칠 때, 혹은 회식 자리에서 어색한 상사와 컵을 맞댈 때 나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잔 높이를 확인한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내 잔의 테두리를 상대의 잔보다 조금 아래로 내려 맞춘다. ‘챙’하고 소리가 나는 지점은 늘 상대의 잔 허리 즈음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배운 예절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일종의 ‘낮은 환대’다.


내 잔을 상대보다 낮춘다는 건,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당신보다 낮은 자세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무언의 고백이다. 그 2cm 남짓한 높이의 차이에는 ‘내가 이만큼 당신을 존중하고 있습니다’라는 정중한 문장이 생략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진심이 맞닿을 때 발생하는 기분 좋은 비대칭이다.


상대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일 때 발생한다. 내가 잔을 내리면 상대도 질세라 잔을 더 아래로 내린다. 서로 더 낮은 곳에서 부딪치기 위해 잔을 내리다 보면, 결국 테이블 바닥 근처에서 아주 작고 낮은 소리로 잔이 부딪친다. 우리는 서로의 높이를 깎아내며, 비로소 같은 높이의 진심에 도달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높은 건배사보다 훨씬 더 묵직한 울림이 그 낮은 소리에 담긴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높이려 애쓴다. 더 높은 연봉, 더 높은 직급, 더 높은 사회적 위치.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늘 ‘낮아지는 쪽’이다. 나를 낮추어 상대의 잔을 받쳐주는 그 마음은, 타인을 주인공으로 세워주려는 가장 따뜻한 연출이다.

오늘 밤, 누군가와 잔을 부딪칠 일이 있다면 가만히 손목을 살펴보고 싶다. 내 잔이 상대의 시야보다 높지는 않은지, 혹시 나도 모르게 ‘높은 사람’이 되려 하지는 않았는지.

2cm만 낮춰본다.


그 미세한 틈 사이로,
딱딱했던 관계가 녹아내리는 다정한 음악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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