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우리 삶에 주는 힘
무대를 밝히던 조명이 꺼진다. 웅성거리던 객석이 이내 조용해진다. 미세한 긴장감이 돌고, 우리는 그들을 기다린다. 전체 암전. 다시 무대에는 핀 조명이 켜지고 우리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을 떠나 연극의 시간을 만난다. 조용한 흥분과 미세한 떨림 속에서 관객과 배우는 서로의 눈을 마주한다.
이랑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한 젊은이다. 재개발 업자 거위는 이랑이 살고 있는 지역에 주택 무료 분양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 재개발 지역을 허물어 새집을 짓고는 집을 무료로 나누어준다는 것이 거위의 계획이다. 이랑과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이 철거되는 것에 거세게 반대한다. 이랑의 아버지는 거위의 행동을 막기 위해 시위를 벌인다. 끝내는 철거되고야 마는 집들 앞에서 주민들은 부당하게 잃은 집을 되찾으려 갖은 노력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거위가 새롭게 지은 집을 주민들에게 소개하고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10명의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위가 이랑의 아버지를 찾아봐 새집에서 살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신이 새로 지은 집에 이랑의 가족을 무료로 살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거세었던 분노는 오고 간데 없이 아버지와 이랑은 거위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거위의 새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들은 새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날부터 거위는 이랑의 아버지에게 ‘복실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의 의아함도 잠시 이내 자신의 별명에 익숙해진 이랑의 아버지. 거위는 그에게 이것저것 시키기도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박제 호랑이를 보여주며 겁을 주기도 한다. 어느새 이랑과 이랑의 아버지는 거위의 동물농장에 사는 농장동물인 강아지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지난 10월 서울 ‘한성 아트 홀’에서 막을 올린 연극 ‘농장동물’의 내용 일부분이다.
집이 간절했던 이랑과 이랑의 아버지는 그토록 원하던 집을 얻고 인간성을 잃는다. 자본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본성을 내어놓은 것이다. 그들은 거위의 울타리 안에서 거위의 밥을 먹고 울고 웃는다.
연극 ‘농장동물’의 제목을 듣는 순간 소설 ‘동물농장’이 떠올랐다. 동물농장은 풍자와 우화로 날카롭게 권력과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는 조지 오웰의 걸작이다. 그는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정치 상황을 동물농장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 빗대어 표현했다. 인간의 농장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부당함을 알아차리고 존엄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승리의 기쁨도 잠시, 이내 그들 속에서 생겨난 권력층들의 모순과 편파성에 갇혀 동물들의 이상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데올로기 간의 대립과 반목은 왜 반복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설 ‘동물농장’이 농장에 사는 동물들이 스스로를 자각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연극 ‘농장동물’은 물질과 자본을 이용해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고 존재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이야기한다. 소유의 갈망에 사로잡혀 끝내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본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농장의 동물이기를 자처하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오고 간데없고 말이다. 지금은 오로지 자본으로 환산이 가능한 것만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는 자본 논리에 따라 사람들은 소비자로 전락했다.
무대는 다시 암전 되고 공연장 전체를 밝히는 불이 다시 켜진다. 우리는 이제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분명 연극을 보기 전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다. 공연장을 나서며 새로운 시간을 살 것을 다짐한다. 연극은 서로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현장 예술이다. 그러기에 몰입감과 공감적 분위기는 어느 매체보다 압도적이어서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여운은 어떤 예술 장르보다 강렬하다. 예술의 힘은 편안함과 불편함을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 내면에 사유를 발생시키는 것에 있다. 예술이 주는 불편함의 힘을 느낀다면 내 마음속 진동에 귀 기울이고 대화를 시도해보라. 질문을 마구 던져보는 것이다. 불편함을 바라보고 다가서서 말을 건네고 그 이유를 찾는 여정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예술이 우리 삶에 주는 힘이다. 이렇게 예술은 우리의 삶에 개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