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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소묘 Oct 04. 2022

사유의 도시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늘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은 박물관 바닥에 안내지를 펼쳐 둔 채 열띤 토론을 벌이고 학생들을 인솔해온 선생님은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쉴 새 없는 몸짓과 함께 열변을 토한다. 홀로 방문한 어떤 이는 박물관 로비에 있는 경천사지10층석탑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열을 맞춰 인솔자를 따라 이동하는 어르신들, 어른의 손에 이끌려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는 아이들. 모두들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기 위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모든 사물과 교감을 이루기 위해 온몸을 열어둔다. 그들은 교감의 전쟁터에 용감하게 걸어 나가는 용사들이다.

 공간의 열기, 아우성과 탄식을 뒤로하고 ‘사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우리나라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국립중앙박물관 내 전시 공간이다.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을 따라간다. 검은 공간만이 있는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지나면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을 만나 볼 수 있다.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를 튼 채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사유의 방’은 두 점의 반가사유상과 함께 사유에 빠져드는 시공간의 체험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요란한 안내 문구나 장식물은 없다. 전시마다 유행하는 VR이나 QR, 영상은 더더욱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그 특별함이 기교를 너머 서는 장엄함을 선물한다. 깊은 어둠과 자그마한 불빛, 정적 그리고 고요함. 전시장에서는 낯설지만 일상에서는 익숙한 것들이 두 반가사유상과 함께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반가사유상 둘레를 따라 원을 그리며 걷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나는 어느새 별빛이 내리는 사유의 숲을 걷는 철학자가 되어있었다. 도시 속에 사유라는 정적인 시간을 선물하고 그 시간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반가사유상은 깊은 생각에 빠진 석가모니의 모습이면서, 깨달음을 잠시 미루고 있는 수행자와 보살의 모습이다.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이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지는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표현한 것만 같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 이제까지 밝은 빛 속에서 만난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유의 시간과 고뇌를 느껴 볼 시간이다.

 예술작품을 보며 느끼고 사유한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작품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에너지를 품고 있고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사유의 시간과 만나는 순간 우리를 또 다른 세계와 통하는 길을 열어준다. 사유는 다른 세계로의 연결통로를 여는 열쇠다. 열쇠를 꽂는 순간 서로의 파장이 만나고 전류가 흐르고 그다음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사유의 방을 걷고 어제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예술작품이 주는 힘이며 사유의 작용이다. 마침내 사유는 내 몸에 새겨지는 삶의 지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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