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소박한 집 한 채, 창문 하나에 장식이라곤 없다. 앙상한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네 그루의 소나무, 차디찬 계절을 견디는 중이다. 바싹 마른 채로 고스란히 겨울바람을 맞으며 거칠어진, 윤기 없는 얼굴이다. 못내 애처롭다.
-이 작품, 투시도법에 맞게 않게 그려서 어색하더라고요. 공간 배열도 어설프고요.
-여기에 투시도법을 적용하는 것이 맞을까요?
-그림이 초라해 보이는 데, 김정희 선생님의 그 순간이 상상되네요.
-글과 그림이 함께 있으니 작가의 '이 순간'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는 김정희의 '세한도'를 함께 바라보는 중이다.
세한도_김정희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호숫가 근처 카페에 모여 앉았다.
함께 읽은 책은 '이 순간을 놓치지 마/ 이종수/ 학고재'다. 저자는 우리 그림 속에서 찾은 자신의 '그림 보물상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당부한다.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 그림이 전하는 즐거움, 계절이 주는 기쁨도 찰나처럼 스쳐지나 버릴지 모른다. 지금 내 마음을 두드리는 그림 한 점 있다면 첫걸음이 되기 충분하다. 보물 찾기를 시작해 보자. 이 순간을 놓치지 마. 당신의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지금 당장 그림 즐기기를 해보기를 권한다. 이 순간 나에게 보물이 될 만한 그림을 꼽아 보라는 것이다. 당장 해보라는 채근 덕분에 그림을 골라보는 기회를 얻는다. 찬찬히 살펴보는 손끝에서 정적인 줄로만 알았던 우리 그림의 역동성을 찾아낸다.
마상청앵도_야묘도추_촉잔도
인생의 봄날이 그리워 나귀를 타고 지나가던 선비를 휙 뒤돌아서게 만든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끊어질 듯 이어져 아슬아슬하고, 좁고 험한 산세를 마주하게 하는 심사정의 '촉잔도', 고양이는 병아리 한 마리를 낚아챘다, 깜짝 놀란 어미닭은 도움을 요청하고, 놀란 집주인은 장죽을 뻗는 한바탕 소동의 순간을 그린 김득신의 '야묘도추'.
그림 속 인물들과 함께 울다 웃는다. 그림 속 인물들과 마음을 나눈다. 그 풍경 속에서 그 시간을 함께 하는 듯하다. 우리 그림이 주는 편안함은 그림 속에 우리들의 삶이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omystory_이 순간을 놓치지 마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에 빠지기 충분한 순간들이다.
그림은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림으로 다가가 말을 걸어보자. 그리고 나만의 해석을 붙여보자. 우리의 창조적 해석을 붙여 봄으로써 예술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은 그렇게 우리 곁에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