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움도 커지면 그리움이 되는 것인가 보다.

by 온결

형님의 지방 쓰는 법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예쁘게 쓰고 싶어서 한 자 한 자에 힘을 주어 열심히 쓰고 또 썼다. 얼마나 썼을까. 내 옆에는 형님의 이름과 함께 여러 장의 용지가 구겨져 있었고, 내 손은 쥐가 날 것처럼 아프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연습한 종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다 문득 ‘어, 형님 이름을 썼는데 혹시 내가 연습하는 동안 형님이 내게 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형님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바로 쓰레기통에서 그 연습한 용지를 꺼내 구겨진 종이를 다시 잘 펼쳤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다 예전 집에서 제사를 드리고 마지막에 지방을 불에 태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난 라이터를 들고 그 용지를 불에 태웠다. 그리고 내 옆에 있을지도 모를 형님에게 말했다.


‘형, 내 옆에 있다면 미안해.’


‘일부러 한 건 아니야. 다음부터 연습할 때는 형 이름은 안 쓰고 연습할게. 미안해.’


‘지방도 다 쓰고 나면 이름은 빼고 쓰다가, 형 있는 데 가면 그때 형 이름도 쓸게.’


이번 주말에 형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일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는 다이소에 들려 형님에게 쓸 지방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사 왔다. 형님이 살아생전에 커피를 아주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형님께 갈 때는 내가 직접 커피를 내려 드리고 싶어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도구를 준비했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돌아가신 형님께서 과연 진짜 커피를 드실까?’ 형님이 계신 곳은 높은 곳인데 아래에도 다른 고인 분들이 있다. 그럼 어디에 놓아야 형님이 드시는 거지? 내가 형님을 위해 놓아두면 그걸 드시는 분이 형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건가? 등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니 추모공원 봉안실 옆에는 추모실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곳에 모시고자 하는 분의 사진이나 지방을 올려 두면 그분이 오신다고 한다. 그래서 난 형님의 지방을 쓰기로 했다. 형님이 좋아하시는 커피와 맥주 또한 함께 준비해서 가져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돌아가신 분께도 좋은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형님에게는 11월 1일, 그날이 가장 좋은 날이라 그날을 가는 날로 정했다. 시간도 오전이라 해서 난 토요일 새벽부터 출발할 생각이다.


살아생전 형님과 나는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만나면 싸우기부터 하는 원수지간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날, 일 년에 명절 두 번을 제외하고는 서로 보지 않고 지내다 코로나 핑계로 이후부터는 아예 보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형님이 돌아가시기 1년 전, 울산에 우연히 형님 친구분이 가게를 차렸다고 했고 또 마침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 만남을 가진 것이 유일했다.


그곳에서 내 딸은 형님을 보고 나와 너무 똑같이 생겼다며 놀라워했다. 지금도 형님에 대해 이야기하면 딸은 아빠와 쌍둥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이 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작가의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종이에 긁어 새기면 글이 되고,

그러한 심경을 선과 색으로 화폭에 옮기면 그림이 된다.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닿을 수 없는 인연을 향한 아쉬움,

하늘로 떠나보낸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은

마음속에 너무 깊게 박혀 있어서 제거할 방도가 없다.

채 아물지 않은 그리움은 가슴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그러다 그리움의 활동 반경이 유독 커지는 날이면

우리는 한 줌 눈물을 닦아내며

일기장 같은 은밀한 공간에 문장을 적거나

책 귀퉁이에 낙서를 끼적인다.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쏟아내야 하기에,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언어의 온도」, 이기주)


내가 왜 그리워할 만한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미움도 커지면 그리움이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러니 형님에게 커피를 맛있게 타 드리기 위해 여러 가지 커피 원두를 살피고,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원두를 골라 준비하고, 형님에게 가장 좋은 기일을 정해 찾아가기로 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잠시 문제가 생겼다. 내 딸이 학교에서 수업 시작종이 친다고 빨리 교실로 들어간다며 계단을 뛰어가다 넘어져 발가락뼈가 골절되었다. 그것도 성장판이. 이런 내 딸은 여자아이지만 남자 같은 성격이라 교실이 3층에 있는데 쉬는 시간 10분 동안 운동장에서 남자아이들과 뛰어놀다가 종소리를 듣고 교실로 뛰어 들어가다 넘어졌다고 한다.


‘제발 딸인데 딸처럼 행동하면 좋으련만.’


‘어찌 아들처럼 노는지.’


내 딸은 모습만 여자아이일 뿐,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남자아이이다. 친구도 여자아이들과는 재미가 없다고 놀지 않는다. 치마 입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트레이닝복을 가장 좋아한다. 걸리적거리지 않아서 좋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런 사고로 인해 깁스를 한 상태라 초등학교 3학년인 어린이를 혼자 집에 두고 형님에게 갈 수 없는 상황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아내는 딸이 집에 혼자 있지 못하니 그대로 싣고 가자고 한다. 형님에게 가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준비한 일인데 못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그렇게 말해준 아내가 고마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초기가 중요하다고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리 차에 있어도 차가 움직이면 무리가 갈 텐데, 또 형님이 계신 곳이 천안인데 울산에서 천안까지 너무 멀어서 걱정이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며 아내는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예진이는 잘 견딜 거야. 이전에도 그랬잖아.”


“차 안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눕혀 놓고 올라가는 동안 휴게소란 휴게소는 다 들러 가면서 쉬면 돼.”

“올 때도 최대한 쉬면서 편안히 오면 되고.”


“또 예진이는 차 안에서 태블릿 주고 오락하면 좋아할걸.”

웃으며 말한다.


난 마지못해 허락하듯 아내의 말에 수긍하며 “그럼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겠네.”라고 말했다. 이번 형님에게 가는 길에 아내와 딸을 위해 맛집과 경관 좋은 커피숲, 그리고 딸이 좋아하는 놀이가 있는 동물 카페 등을 찾아 두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되면 독립기념관까지 갈 생각으로 일정을 잡아 두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정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동물 카페와 독립기념관은 패스해야 할 것 같다. 딸의 다리로는 걷기 힘들 테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에게 미리 일정을 알려주지 않아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알게 된다면 딸 성격상 난리가 날 것이니까.


‘하… 다행이다.’


천안까지 가는데 형님의 아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형님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찬영이. 예전 형님이 살아 계실 때 우연히 전화 통화를 했었다. 저녁쯤이었을 것이다. 형님은 집 앞 공원에서 찬영이와 함께 운동을 하고, 호프집에 와서 형님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고 찬영이는 아버지 옆에서 돈가스를 먹고 있다고 했다. 목소리에서도 형님의 행복이 느껴질 정도로 밝아 있었다.


이후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형님은 찬영이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고, 찬영이 또한 엄마와 함께 있는 것보다 아빠와 지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부자는 자주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런 찬영이와 내 딸이 서로 만나면 좋으련만. 언젠가 딸에게 말했다.


“예진아, 너한테 오빠가 있다. 큰아빠 아들인데 기억하지? 큰아빠.”

“어, 아빠랑 똑 닮은 사람.”


“그래, 그 큰아빠 아들이 있는데 그 사람이 네 오빠야.”


“그래? 잘생겼어? 보고 싶어.”


“지금은 못 봐. 바빠서. 근데 오빠 나이가 20살이야.”


“어~~ 그럼 오빠가 아저씨야?”


“꼭 만나보고 싶어, 아빠.”


지금은 찬영이가 천안이 아닌 강원도에 있다고 한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겠다.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없이 지내다 갑자기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관심 갖듯 연락하는 것도 찬영이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 혹 내가 전화를 해서 찬영이가 형님 생각에 다시 힘들어하지 않을까. 이런 날 연락하면 뭐라고 생각할까. 혹시 더 멀어지지는 않을까.


이전까지는 가족 간의 끌림이나 정 같은 것을 단 한 번도 부러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형님의 상중에 형수님 가족분들이 보여 준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는 모습에 부러움이 밀려왔다. 우리 가족은 왜 그러지 못할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가족을 만들어야겠다고.


어머니가 말하길 할머니가 생전에 하신 말씀이 송 씨 집안 형제간에는 항상 트러블이 생기고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해서든 끊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그게 우리 대에도 이어진 것 같다고. 그러나 이것만큼은 내 대에서 끝내고 싶다. 이걸 내 딸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그러질 못하는 내가 한심스럽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내가 찬영이에게 전화를 걸어 친해진다고 해도 찬영이와 내 딸의 사이는 그들이 정하는 것이지, 내가 연결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만약 그게 맞다면 형님과 내 사이도 좋았어야 했고, 나와 내 동생과의 사이도 그래야 했다. 어머니는 그만큼 노력했었으니까.


그러나 찬영이와 내 딸이 서로 알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연결 고리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아직 찬영이 연락처도 알지 못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동생과 찬영이는 사이가 좋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연결 고리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내가 다가갈 수 있는 고리는 될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방법을 찾아 나가면 되지 않을까. 이번 기회에 동생을 통해 찬영이의 연락처를 조심스럽게 물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예진이는 지금 잘하고 있을까. 오늘이 예진이 우쿨렐레 발표 날인데 다리를 다쳐 아내가 태워 주기로 했는데 제시간에 잘 갔는지 모르겠다. 원래라면 아내가 수업이 끝나고 꽃을 사 들고 나와 함께 딸의 공연을 보려 했는데, 딸의 깁스 덕분에 아내가 직접 딸을 공연장에 데려다 주기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난 결국 가지 못했다.


‘잘 도착해서 잘하고 있으려나.’


그래도 내 딸은 잘할 거라 생각한다.


나와 내 아내의 딸이니까.


“예진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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