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티를 감추려 애쓰던 시간
인터뷰를 보러 가던 날, 운전하는 내내 핸들을 잡은 손도 내 심장도 아주 떨렸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보여주면 되는 거야. 떨려도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자.'
어떻게 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인터뷰 후, 설레는 기다림 끝에 "선생님과 함께 일하길 원합니다.” 기다리던 이 말을 듣게 되었다. '아! 일하고 싶던 곳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어! 이제 나는 엄마 말고, 내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교사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첫 출근을 기다렸다.
그런데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들어간 자리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경력자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생긴 자리였다. 그랬기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과 동료들까지도 이미 ‘기준’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이전 ㅇㅇ 선생님은요…” “경력은 얼마나 되셨어요?” "이건 왜 이렇게 하셨어요?" 말끝은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비교하고 있었다. 매일 당황하던 나는 괜히 더 또박또박 말했고, 괜히 더 밝게 웃었다. 나의 공백과 당황이 티 나지 않았겠지. 비어 있던 시간들이 얼굴에 쓰여 있진 않았겠지. 수업이 끝나고 혼자 교실에 남아 책상을 정리하며 숨을 고르던 날들이 이어졌다. 말도 안 되는 지적을 들은 날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차에 타서는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 잠들면 내일이 또 오겠지. 그 생각에 일부러 늦게 잠들던 날도 있었다. 내일을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어서. 그래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보다 버텨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출근하고 또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수업 준비를 다시 하고, 교재에 필요한 것을 찾아서 좀 더 공부하고서 퇴근했고, 집에 와서도 계속 필요한 공부를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나를 계속 채우며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조금씩 숨이 덜 찼다.
정규 수업 후 내가 맡았던 특강은 신청 인원이 정원을 넘기기 시작했고 추가 반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학부모 한 분의 말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고 소문났어요.” "어머 정말요? 그런 소문을 왜 저는 못 들었을까요? " 그 앞에선 가벼운 듯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은 그때 얼마나 힘이 되어주었는지 모른다. 조금씩 내 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비교의 말은 줄어들었고, 말을 먼저 걸어주고 찾아오는 동료들도 생겼다. 출근길이 덜 무거워졌고, 버틸 만해졌다.
나는 경단녀 티를 내지 않으려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지만 결국 티가 났다. 아이 셋을 키우며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는 티가. 아이들을 떠올리면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 포기하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건 더 멀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버텼다. 한숨을 크게 쉬면서 내 자리로 들어서기 두려운 날에도 출근했다. 그리고 나는 알아버렸다.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이런 나를 왜 누가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