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만진다는 것
교실 현장에서는 교사만큼이나 학생들의 학습 태도와 성적이 아주 중요하다. 그 또한 우리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침 등교할 때부터 어딘가 편하지 않은 표정, 조금은 굳어 있는 눈빛이 먼저 보였다.
지금 이 아이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구나, 불안이 먼저 와 있구나 싶은 순간들. 그 눈빛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유난히 예민한 아이, 괜히 친구를 건드리는 아이, 사소한 말에도 폭발하는 아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
처음엔 나도 긴장했다. 오랜 경력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터라 절반이 넘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눈빛은 조심스러웠다. '그래, 경계할 만도 하지.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게 당연하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업무를 익히는 것도, 적응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 천천히 친해지는 것이었다. 친해져야 진짜 마음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믿고 싶었다. 돌발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문제행동 뒤에는 결핍이 있다고. 그래서 우선 혼내기보다 묻고, 지적하기보다 기다렸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뭐였을까?”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처음엔 나를 경계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쉬는 시간에 내 곁을 맴돌기 시작했고 어느샌가 내게 기대었고 웃고 있었다. 눈을 피하던 아이가 눈을 맞추었고, 울음을 먼저 터뜨리던 아이는 한번 마음을 정돈하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집에서도 느껴졌다고 했다. 조금씩 마음을 열며 웃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나는 매우 기특하고 예뻤다.
하지만 학부모 상담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전화 통화인데도 마주 앉은 듯 진땀이 나던 날도 있었고,
통화를 마치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내 소신을 분명히 말해야 하는 날도 찾아왔다.
“그 아이가 저희 아이와 친한 거 싫거든요. 같이 안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이전 선생님은 더 무섭게 하셨어요.
그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 안 들으신 건가요? 그 아이 엄마는 알고 있나요? 좀 더 세게 훈육해 주세요.”
적지 않게 당황했고 화도 났지만 나는 차분한 듯 내 소신을 이야기했다.
“물론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전해 들은 이야기는 참고일 뿐 그 아이를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직접 만나는 아이가 정확하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달라지고 자랍니다. 저는 전 선생님과 똑같은 방식으로 훈육한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무례한 행동에 대해선 엄하게 훈육합니다.”
전화를 끊고서 처음엔 내 자존심이 먼저 올라와 울컥했고, 나중엔 안타까움이 올라왔다.
이해되지 않는 말들도 있었지만 나 역시 엄마이기에 어떤 심정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마 그 부모도 아이를 사랑해서일 것이다. 그 방법이 최선이라 믿고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요구에 맞춰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힘들던 아이들은 조금씩 웃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적어도 “먼저 혼부터 낼 어른”이 아니라 “들어봐 주는 어른”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통했다. 아이들의 순수함 때문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아이들과 가까워지며 학부모들과의 대화도 달라졌다. 경계 대신 질문이 오고, 불신 대신 신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식 날.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휴대전화에 메시지들이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2학기 동안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항상 아이의 마음을 먼저 만져주셔서 감사해요. 졸업식 영상 속 아이 웃는 얼굴을 보며 뭉클했어요. 어느 졸업식이 이렇게 따뜻할까요?”
“선생님, 우리 아이는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은 아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저 울었었어요.
그 말 덕분에 저희 부부도 아이를 더 안아주려고 노력했어요. 선생님은 아이에게도, 제게도 최고셨어요.”
나는 그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눈으로 읽었지만 마음으로 새기고 싶었다.
아이들을 힘들게 품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엄마가 되었던 날들, 코로나 시절 아이들을 재워놓고 공부하던 밤들, 그리고 퇴근 후 계속 이어진 공부, 교실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던 시간들이 그 문장 안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나는 성적만을 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는 성과로 기억되겠지만 나는 아이의 기억 속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해 준 어른으로 남고 싶다. 그날, 분명히 알았다. 내가 왜 이 교실에 서 있고 싶은지. 나는 이 현장에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다.
성적을 먼저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 메시지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조용하지만 크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깨달은 것 또 하나. 이 교실은 끝이 아니라 내게 시작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