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잘 되어야겠어!

너희에게 꼭 갈게!

by On Rachel



교실에서 다시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꿈을 이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가 내 꿈의 끝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현재 이 교실이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라면, 내가 앞으로 또 가야 할 자리는 어디까지일까라는 질문이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었다.




언젠가 둘째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요?”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대답이 나왔다.

“영어 선생님이 되는 거였지.” 아이는 신기해하며 “우와! 그럼 엄마는 꿈이 다 이루어졌네요!”

나는 "아니, 다 이뤄지진 않았어. 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 아이에게 대답했듯 나는 이미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가르치는 일이 좋았다.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원어민들과 일하는 것도 참 즐거웠다. 20대부터 나는 그 꿈 안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소원이 자라기 시작했다.


특목고에 진학하며 고1부터 일찍 독립해 살았던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빨리 외로움과 자립을 배웠고, 그 안에서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도 3년 내내 겪었다. 그래서였을까.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아픔이 있는 청소년들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의 말 뒤에 숨은 환경이 보였고, 상처가 느껴졌다. 괜히 더 품고 싶고, 안아주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알게 되어 찾아가기 시작한 보육원과 그룹홈. 몇 년 동안 그곳을 오가며 난 내가 가진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을 나누었다. 시간과 약간의 돈, 그리고 마음.


결혼 후 난임을 겪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입양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내 아이를 낳은 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또 한 아이를 안고 싶었다고. 그 순서가 바뀌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눈물로 고백했다. 입양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남편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 역시 결국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향한 마음까지 접히지는 않았다. 고향을 떠난 뒤에도 나는 그 지역과 연결된 기관을 찾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임신과 출산, 육아, 그리고 코로나까지 겹치며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늘 그곳에 가 있었다.


코로나 시절,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교수님의 권유로 코칭을 배우고 시험을 보고 전문코치가 되었고,

조심스럽게 아이들과 코칭을 시작했을 때 많이 놀랐다. 아이들은 예상보다 더 깊은 이야기들과 더 아픈 기억들을 담담히 꺼내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가진 꿈도 많았는데 그 꿈은 그저 잡지 못할 신기루처럼 바라보는 말들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날 나는 현장에서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거듭 고민했고 그 고민 끝에 교수님께서 제시해 주신 청소년상담사, 진로상담사까지 차례로 계획하고 공부를 이어갔다. 준비 없이 누군가의 인생에 들어가는 것은 책임 없는 일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 없이 영어 실력을 쌓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언어이고 과목이기도 하다.

독립의 나이에 서 있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막막하다. 함께 고민해 줄 어른, 현실적인 길을 제시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영어교육 전문가이면서 청소년 상담 전문가로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 꿈이 더 또렷해진 계기가 한번 더 있었다. 자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은 자립금을 사기당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룹홈 아이의 뉴스. 그리고 그룹홈 아이들의 삶을 다룬 연극. 공연 내내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도 못했다. 극 속 이야기가 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그들의 외로움은 더 깊이 내 가슴을 찔렀고 시작부터 흐르던 눈물은 연극이 끝난 뒤에도 쉬이 멈추지 못했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감정으로만 슬퍼하며 안타까워만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돕기 위해 제대로 준비하는 이가 되겠다고. 그리고 약속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그 자리로 꼭 가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현장에서 흔들리지 않을 실력을 쌓고, 아이들이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경제적 기반까지 마련하겠단 동기가 강하게 일었다.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건 맞지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더 공부할 것이고, 더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그리고 더 잘 되어야겠다. 꼭 성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과 삶을 흘려보내기 위해. 언젠가 막막한 얼굴로 세상 앞에 서 있을 너희에게 “괜찮아. 함께 고민해 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멋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너희에게 꼭 가기 위해.



이전 06화선생님은 저희 아이에게도, 제게도 최고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