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데 눈물이 나

멈춘 시간 속에서 나는 움직이고 있었어!

by On Rachel

아이 셋의 엄마라는 사실을 실감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정말 아들 셋의 엄마인 거야?

주말부부였던 탓에 나는 늘 혼자서 아이 셋을 데리고 다녀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갈 곳도, 할 일도 많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꿈도 꿀 수 없던 즈음, 집 앞 시립어린이집에서 그해 3월부터 입소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막내를 보낼 수 있다니. 이제 한 몸처럼 붙어 있던 아이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걸까? 그럼 무엇을 해볼까 설렘이 먼저 올라왔다. 자격증 시험을 알아보고, 수강 신청도 해볼까 하며 나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내의 어린이집 입소 준비물을 챙기던 중 내게 들려온 소식은 온 세상을 멈추게 한 코로나였다. 잠깐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갈수록 심해지면서 학교와 어린이집도 예고 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이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일이라곤 정해진 날에 공적 마스크를 사는 일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잠깐 노는 것뿐이었다. '아니, 이게 맞는 거야? 모두가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야?' 아마 모두의 질문이었으리라. 그래도 남편의 일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나는 아이들과의 집 안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집안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활동을 찾기 시작했다. 물풀로

슬라임을 만들고, 택배 박스로 축구 놀이를 만들고, 자판기를 만들어 과자를 채우고, 김밥을 싸서 뒷산에 가고, 팝콘을 튀겨 집에서 영화를 봤다.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세끼를 해 먹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아이들이 즐겁다면 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주어진 상황 앞에서 이게 통제 가능한지, 아닌지를 빠르게 가려내고 인정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내가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게 가장 덜 아픈 방법이라는 걸 삶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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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엄마이자 홈스쿨 선생님으로 지내는 동안 내 안에서는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던 나는 그 시간이 참 감사하고, 분명 행복한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도 다시 배우고 싶었고 일하고 싶었다. 다시 나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처럼 바라던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는데 이걸로 충분해야 하는 걸까? 아니야. 이제는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 하지만 또 마음 한편에서는 묻는다. '그게 허락될까? 엄마가 되기까지도 9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쉰 시간들이 있는데 가능할까?' 그래도 결론은 하나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더 배우자. 고민 끝에 대학원 입학을 알아보고 원서를 썼다. 과연 아이들이 집에 있는 이 상황에서 가능할까 싶었지만 걱정보다 간절함이 더 컸다. '그래, 다 데리고 가더라도 해보는 거야.' 담당 교수님을 통해 통보받은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에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이렇게 길이 열리다니!


신나는 마음으로 교재를 주문하고, 내가 좋아하는 문구류를 장만하며 그날을 기다렸다. 화면을 통해 교수님과 동기들을 만나 수업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 시간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재택 강의인 덕에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 밥을 챙기고 막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코로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다시 책을 펼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복습을 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간절하면, 방법을 찾아내는 존재이다.


그렇게 우리의 코로나 시절이 지나가던 어느 날, 세상은 위드코로나로 전환되었다. 학교와 어린이집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들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나도 처음으로 대면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그 공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당연한 그 자리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이제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었을까. 간절함은 자신감으로 바뀌어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학벌과 자격증 항목에 쓸 것이 늘었고, 이력서 어디 항목에도 없지만 분명 나의 육아 경험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가던 날, 운전하는 손과 발이 떨릴 만큼 긴장했다. 인터뷰를 어찌 봤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함께 일하자는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 내게 기회가 왔어!'


코로나가 고마울 수는 없다. 누군가의 일상을 멈추게 했고, 누군가의 시간과 건강도 앗아간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만들어진 시간과 상황은 내게 분명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리 아이들과의 시간들을 통해서 나는 다시금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던 나는 사실은 여전히 배우고 싶고, 일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소원했던 행복한 엄마가 되어서 나는 정말

행복했는데, 그래도 눈물이 났던 시간들. 그 눈물은 슬픔이라기보단 다시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내 안의 조용한 신호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멈춘 줄 알았던 그 시절, 나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길은, 결국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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