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오해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by 전온유

강의 현장에서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인지감수성은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남성들이 손해를 보고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편들기 정책이다.”
“성인지감수성은 법정에서나 쓰는 말이지, 일반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개념이다.”


강사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강의 현장은 결코 환영의 무대가 아님을 느낍니다.

강의 시작 전부터 청중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 무거움, 심지어는 적대적인 기운까지 감지되곤 합니다. 아마도 ‘강사가 우리를 지적하고, 몰아붙이고,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며 사례를 들이댈 것이다’라는 선입견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피드백을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의에서 아무리 “성인지감수성은 오해된 개념”이라고 풀어드려도, 이미 마음에 두터운 장벽을 세운 채 앉아 있는 분들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면, 어느 순간 많은 분들이 깨닫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성인지감수성의 의미가 사실은 오해와 편견 위에 세워진 것이었음을 말이지요.


고정관념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인지감수성은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성인지감수성 기준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과연 남성들에게 불리한 것일까요?

저는 이 지점을 설명할 때 ‘슬리퍼 효과(sleeper effect)’, 우리말로 ‘수면자 효과’를 예로 듭니다.

쉽게 말해,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왜곡된 메시지의 힘입니다.


1951년, 항히스타민 신약 실험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A그룹 시민들에게는 의학·과학저널 같은 신뢰 높은 출처를 통해 약의 위험성을 설명했습니다. B그룹 시민들에게는 공산당 신문 같은 신뢰 낮은 출처를 통해 같은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A그룹이 신뢰했고, B그룹은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4주 뒤 조사에서 두 그룹 모두가 “항히스타민은 위험하다”라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출처의 신뢰도보다는 메시지의 자극성에 영향을 받아 기억을 유지했던 것이죠.


이 현상은 지금도 반복됩니다. 가짜뉴스, 소문, “~카더라”가 진실보다 훨씬 더 빨리 확산되고, 오래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성인지감수성에 관한 고정관념과 오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만을 위한 개념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출처를 물으면 대부분은 얼버무립니다.

설령 기사를 언급하거나 유튜브를 말하더라도, 조금만 깊이 묻다 보면 결국 “잘 모르겠다, 그냥 나도 들은 얘기다”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남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왜곡된 ‘고정관념’뿐입니다.


성인지감수성은 상식이다

성인지감수성은 특정 성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저는 오히려 “개념”보다는 “상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나라에서 운전 시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할 당시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정부가 자유를 간섭한다”, “답답하다”, “왜 개인의 선택을 법으로 강제하냐” 같은 목소리가 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은 안전벨트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당연한 상식으로 생각합니다.


성인지감수성 역시 지금은 과도기일 뿐입니다. 언젠가 우리 사회에서 성인지감수성은 안전벨트처럼 모두의 안전과 존엄, 평등을 지키는 기본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목소리

그날이 오기까지 저는 강의 현장에서,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성인지감수성의 본래 의미를 알리고자 합니다. 오해와 편견의 장벽을 넘어, 성인지감수성이 결국 모두를 위한 언어이자 존중과 공감의 시선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