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감수성은 일상 속에 스며든 존중과 배려

안심택시 스티커 하나가 던진 질문

by 전온유

지방 출장길에서 만난 특별한 스티커 하나가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KTX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 뒷좌석 문에 붙은 "성인지감수성 향상 교육 이수택시 -안심택시-"라는 스티커 문구가 그것이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이런 스티커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문구가 의미하는 바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대중교통에서 성인지감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으니까요.


안전만이 ‘안심’을 만들지는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운행일 것입니다. 사고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이죠. 그런데 안전운행 외에도 승객들에게 '안심'을 제공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받은 택시라는 스티커가 붙기까지 그 지역사회나 운송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특별한 사건 없이 선제적으로 캠페인 형식으로 시행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상 속으로 스며든 성인지감수성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인지감수성이 이제 특정 분야나 정책, 법적 다툼, 사건 현장에서만 필요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범식당이라는 팻말을 걸어놓은 음식점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그런 문구만으로도 신뢰감이 높아지는 심리적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식당이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재료선정이나 음식조리, 위생에 모범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안전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연한 것들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우리는 특별한 표식을 합니다.


성인지감수성: 상식 선에서의 존중과 배려

성인지감수성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지켜야 할 상식의 선입니다.

성별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다르다는 이유로 불이익이 받지 않고

사람의 고유한 부분을 귀하게 여기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이런 인식이 있을 때 “여자라면 …해야 하지 않나?”,

“남자니까 당연히…하는 게 맞지 않나?” 같은 말이 자연스레 줄어듭니다.


직장의 풍경: ‘우리 회사의 여자/남자’가 되는 순간

직장에서 성적 괴롭힘을 한 사람들의 변명은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저도 딸 키우는 아버지인데 제가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성희롱예방 의무교육을 10년간 빠짐없이 들었습니다. 성희롱이 뭔지 아는데 제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친해서 몇 마디 한 건데 억울합니다.”

회사도, 경력도, 지역도 다른데 말은 닮아 있습니다.

교육을 ‘들었다’는 사실이 곧 ‘내 것이 되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좌표가 “내 직장의 동료(여성/남성)“가 아니라 “우리 회사의 여자/남자”로 바뀌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회식 자리에서 “여자들은 내 옆에, 남자들은 저쪽에”를 지시하는 대표,

“우리 학교에 꽃송이들(신규 발령 교사)이 들어와 교무실이 화사해졌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관리자.

동료를 ‘성적 대상’으로 대상화하는 시선은 존중과 배려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교육 이수와 실천 사이의 간극

성인지감수성의 개념을 알고,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의 의식이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인권교육을 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인권의식이 충만한 사람으로 바뀌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내 마음의 창이 얼마나 넓어지고 시선과 관점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결국 성인지감수성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변화입니다.


저는 성인지감수성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기본값처럼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양심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그 내재된 감각을 깨우고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성인지감수성 키우기’, ‘성인지감수성 향상’, ‘성인지감수성 높이기’라는 교육 제목들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성인지감수성은 향수처럼 몇 방울 뿌려 겉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장식이 아닙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교육을 받았다”는 말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의 평소 언행입니다.

결국 성인지감수성은 스티커나 수료증이 아닌,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존중과 배려의 태도로 증명됩니다.


“성인지감수성 향상 교육 이수택시-안심택시” 스티커는 작은 약속입니다. 하지만 진짜 안전한 관계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옵니다. 직장에서, 거리에서, 교실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합니다.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존중할 것인가, 역할과 성별로 대상화할 것인가.

성인지감수성은 특별한 현장에서만 필요한 전문 용어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의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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