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내 말의 무게를 인지하는 힘 - 성인지감수성

by 전온유

성인지 감수성은 성차별과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이자 필터입니다.

이런 공감과 존중의 필터를 통해 이웃과 동료, 가족을 바라볼 때 성인지 감수성은 비로소 실현됩니다.

하지만 이 필터 없이 상황을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반응들이 쉽게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왜, 그 당시 곧바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나요?”

“고통을 당했다면서도 사건 직후 평소처럼 출근하고 일한 건 왜죠?”

“혹시 옷차림이 상대방을 자극한 건 아니었나요?”

겉으로는 단순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피해자에게 원인과 책임을 되묻는 방식입니다. 이는 상처를 덧내는 말이 되고 맙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성인지 감수성의 필터를 거치면 전혀 다른 말이 나옵니다.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건 정말 어려웠겠구나. 혹시라도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됐을 테니...”

“그만둘 수도 없고, 그 상황속에서도 출근은 매일 해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야 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문제는 옷차림이 아니예요. 당신 탓이 결코 아닙니다. 그 사람이 당신의 의사와 경계를 무시한 행위였던 거예요.”

이처럼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태도, 그것이 바로 성인지 감수성입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스토킹 등 젠더 폭력 사건의 현장에서 제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사건의 당사자를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바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흔히 ‘어떤 상황에서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성인지 감수성의 필터로 다시 바라본다면, 여기에 심각한 오류가 숨어 있습니다.

“스토킹은 잘못이지만, 여성이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게 결국 가해자를 부추긴 겁니다. 마치 손뼉도 마주쳐야 울리는 것처럼 말이예요.”

“피해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나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그 사람이 괜히 때렸겠어?”

겉보기에는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 같지만, 이는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가해자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피해자에게 원인을 떠넘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것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은 무겁고 아프기까지 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요? 맞습니다. 두 손바닥이 마주치면 소리가 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박수라고 부릅니다.

박수는 누군가를 격려하거나 칭찬하고 응원할 때 사용하는 순수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두 손뼉이 마주치지 않아도 소리가 날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뺨을 때릴 때, 몸을 구타할 때, 공포심을 주기 위해 물건을 부술 때.

그때 들리는 소리는 폭력과 상처의 소리입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스토킹 사건에서 들리는 소리는 가해자의 일방적인 소리입니다.

결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만들어낸 소리가 아닙니다.

만약 피해자에게서 소리가 난다면, 그것은 박수가 아니라 아픔·절망·고통의 소리일 뿐입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속담은 본래 인간관계에서 “타인에게만 원인을 찾지 말고 나 자신도 돌아보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폭력적이지 않은 일상적 갈등 상황에서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격언이 폭력 사건에 적용되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됩니다.

가해자의 책임을 흐리고 피해자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잘못된 해석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됩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바로 그 무게를 인지하는 힘입니다.

“이 말이 폭력 피해자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내가 습관처럼 쓰는 표현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지는 않을까?”

내 관점을 잠시 내려놓고, 고통을 당한 그 사람의 자리에서 바라보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결코 타인과 같은 감정이나 정서를 완벽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상대방의 아픔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이해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상처의 언저리에 도달하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섣부른 판단을 멈추고, 피해자의 위치에 서서 감정과 아픔을 느껴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폭력 사건에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은 결코 사용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그 소리는 가해자의 일방적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며, 피해자는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가해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며,

피해자가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결국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를 성찰하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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