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보다 먼저 필요한 '자기공감'
인간관계에서 나를 상처로부터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자기보호는 ‘단절’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내 삶에서 잘라내고 지워버리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절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갈등을 털어놓을 때 누군가는 “뭘 그렇게 질질 끌려 다녀? 그냥 잘라내”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단절을 실천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라면 사표를 던져야 가능하고, 소모임이나 동아리라면 모임 속 인간관계까지 함께 끊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회성 만남이라면 자연스레 멀어질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으며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곤 합니다.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을 네 부류로 나눠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는 가족입니다. 가치관이 비슷하고 저를 이해해 주기에 젠더 갈등은 거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동료 강사님들입니다. 성평등과 폭력예방을 주제로 활동하는 분들이라 공감대가 크고, 언어와 행동에서도 선이 분명합니다.
세 번째는 교육현장에서 만나는 대상자들입니다. 때로 질문이나 저항은 있지만, 크게 문제 될 상황은 없습니다.
마지막은 간헐적으로 만나게 되는 소모임 사람들입니다. 직업과 연령, 성별과 배경이 다양하다 보니, 저는 이 자리에 참여할 때 늘 마음을 다잡습니다. ‘소모임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하자, 나 자신을 단단히 지키자.’
이 마지막 그룹은 흔히 말하는 ‘일반 시민들’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분들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수성 수준을 가장 생생하게 체감합니다.
얼마 전 동창들과의 모임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술자리에서 오가는 성적인 농담, 외모 평가, 특정 신체를 대상으로 한 표현들. 모두가 웃고 박수 치지만, 혼자 마음이 불편했던 저는 여러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 말이 정말 웃겨서 웃는 건가? 이 자리는 강의 현장이 아닌데, 괜히 한마디 했다가 분위기를 망치지는 않을까.”
그 순간, 상담 현장에서 만났던 내담자들이 떠올랐습니다.
회사에서 성희롱 발언에 힘들어하면서도, 자신만 유독 예민한 것 같아 괴로워했던 분들. 다들 웃는데 혼자만 웃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던 분들. 거부 의사를 표현하면 괜히 문제를 만드는 사람처럼 낙인찍힐까 두려워했던 분들. 그 심정이 제 마음과 닮아 있었습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사냐,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농담은 농담으로, 다큐는 다큐로 받아야 원활한 소통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굳이 농담의 소재가 성적이거나 차별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주제로도 충분히 웃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농담이 성적인 이야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문제이지 웃지 않은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는 개인 모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지역 축제나 문화행사의 사회자는 보통 지자체나 기관에서 섭외를 하게 되는데 외모·성·비하 발언을 농담 삼아 분위기를 띄우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청소년에게 성적인 질문을 던지며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습니다. 분위기를 위해 남을 깎아내리거나 성을 소비하는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 경험들은 저에게 다시 한 번 깨닫게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은 낮고,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강의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같은 고민을 겪는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 예민해서 그렇거나, 까칠한 것도,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교양의 수준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있기 때문에 그런 불편함을 느낀 것입니다. 혹시 그 자리에서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더라도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강한 구조와 권력의 그물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현명하게 버티는 과정일 뿐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말씀드렸듯, 성인지감수성은 결국 공감의 필터입니다. 그런데 이 공감은 타인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공감입니다. 자기 공감은 가장 우선적으로 경험되어야 할 공감의 영역입니다. 단절은 강력한 수단이지만, 당장 단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자기 공감이 매우 필요합니다.
“나는 잘못된 게 아니다. 이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불편한 것이다. 그럼에도 잘 버티고 있고,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위로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