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선의로 한 말이 2차 가해가 된다고요?

성인지감수성 슬기로운 직장생활

by 전온유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다루다 보면, 정작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닌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사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모 기업의 관리자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팀 내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는데, 지난주만 해도 함께 회식하며 웃고 떠들던 사이가 이제 신고인과 피신고인으로 나뉘어 조직 분위기가 얼어붙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제가 신입사원 때부터 직접 가르친 아끼는 후배들이에요. 더 나빠지기 전에 제가 중재해서 화해시키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말을 말해야 할까요?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그분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후배를 아끼는 마음, 조직의 화합을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었죠. 하지만 제가 드린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매뉴얼대로 처리될 수 있도록 지켜만 보시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그분이 하려던 '선의의 중재'는 전형적인 2차 피해 행위입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가해자와 한자리에서 섣부른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차 피해란 직장 내 성 사안 신고 후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조력자 포함)가 입게 되는 모든 피해 행위를 말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2차 피해가 주로 피해자의 동료나 지인,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에 의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위로와 공감을 주어야 할 사람들, 피해자 편에서 함께 싸워줘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상처를 주기 때문에 그 배신감과 분노는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몇 년 전 어느 회사에서 목격한 것은 1차 가해자는 합의와 용서를 받았음에도, 몇 달 후 피해자를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과 가해자를 두둔했던 2차 피해 행위자들에 대해서는 엄벌을 탄원했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2차 피해의 모습은 매우 다양합니다.

가해자 두둔하기 : "원래 좋은 사람인데...", "술 먹고 실수한 거잖아", "직장생활 열심히 했던데 사람 잘못 만나서 안됐다."

피해자 비난하기 :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왜 그렇게 받아들였을까", "싫었다면 그 자리에서 말했어야지", "작년에 업무로 혼났다고 이런식으로 신고해서 복수하는거야?"

책임 전가하기 :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뭔가 빌미를 제공했을 거야"

섣부른 화해 중재 : "둘 다 좋은 사람들인데 이럴 필요가 있나", "그냥 둥글게 살자고"

사건 내용 누설 및 허위사실 유포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나 조력자에게 인사상 불이익

은폐나 늦장 처리


중재를 하려했던 그 관리자를 배웅해드리며 저는 마음속으로만 덧붙였던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 조직 분위기가 어려워진 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신고를 해서가 아니에요. 그 행위를 한 사람 때문이죠. 그리고 이 사안을 매뉴얼대로 엄정하고 단호하게 처리해야 다시 유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회사의 어려움은 한 번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서점에는 직장생활 노하우에 관한 책들이 넘쳐납니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초고속 승진 요령, 상사에게 인정받는 법...

하지만 저는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성인지감수성 향상하기

성인지감수성은 동료를 평등한 관점에서 대하고, 성별에 의한 고정관념이나 차별의식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성적인 농담을 하지 않고, 외모 평가를 하지 않으며, 인간적인 친절을 호감이나 다른 의미로 오해하지 않는 것이죠.


어제의 동료가 한순간의 잘못으로 선을 넘는 행동을 했을 때,

사람 그 자체와 그 사람이 한 행동을 구별하여 객관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성인지감수성을 지닌 성숙한 직장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선의의 말일지 몰라도,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선의가 아닌 상처가 됨을 인식할 수 있는 것.

결국 성인지감수성은 존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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