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내담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욱하는 성질 때문에 순간적으로 사고를 치고, 후회하고,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뉴스나 기사를 보면, 화나 분노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분노조절 장애’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있죠. 어떤 사람은 화와 분노를 잘 다스리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그 감정에 휘둘려 좋지 않은 행동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감정 조절이 타고나는 능력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 조절은 살아가면서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런 학습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기쁨이나 행복 같은 감정이야 어떻게 표현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화나 분노의 감정은 억누르지 않으면 압력이 쌓이게 되죠.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 감정을 분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감정을 표출하지 않아도 되는데, 올바른 방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가장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죠.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분명 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화와 분노도 내 감정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럴까요?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상대방의 행동에 화를 내지 않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감정 표현을 해야 한다면, 그 말이 맞겠죠. 그러나 사람마다 반응은 다릅니다. 그러니 그 상황에서 화를 낸 것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선택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 중에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보면 어떤 사람은 “뭐야, 예의가 없네” 하고 혼잣말하며 그냥 지나갑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저 인간 나를 무시해?” 하며 가속 페달을 밟아 그 차를 추격하고 보복 운전을 할 수도 있죠.
사람은 로봇이 아닙니다. 같은 상황에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행동이 입력된 상태였다면, 끼어드는 차량을 보고 모두가 보복 운전하거나, 모두가 양보하는 한 가지 행동만 해야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그러니, 화를 내고, 벽을 치고,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선택입니다.
한 번 이렇게 상상해보세요.
우리 마음속에 서랍이 있다고요. 사람마다 서랍의 개수가 다릅니다. 서랍이 하나뿐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세 개, 예닐곱 개, 또는 그 이상을 가진 사람도 있죠.
전철에서 누군가 실수로 당신의 발을 밟았습니다.
마음의 서랍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은 갑자기 솟구친 감정을 어딘가에 담아두려고 하지만, 빈 공간이 없어서 그 감정이 즉시 터져 나옵니다.
“야, 앞을 똑바로 안 보고 다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죄송하다면 다야?”
그렇게 시비가 붙고, 주변은 금세 소란스러워지죠.
퇴근 후 집에 갔더니 청소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또 감정을 담을 공간이 부족해서 즉각적으로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여긴 쓰레기장이야? 온종일 뭐 한 거야? 이러니 내가 집에 들어오기 싫은 거 아니야!”
불편한 감정을 그때그때 비워내야 하니까, 반응은 항상 즉각적입니다.
반면에 마음의 서랍이 여러 개인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은 그때그때 감정을 분류합니다. 이 상황에서 화를 낼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는 거죠.
‘굳이 화를 표현하지 않아도 되겠네’ 하며 서랍 하나에 감정을 차곡차곡 담아둡니다.
‘청소가 안 됐네. 아마 바빴겠지. 좀 지저분하지만 나중에 같이 치우면 되지 않을까?’ 하고 또 다른 서랍에 넣습니다.
결국 문제는 내 마음의 공간입니다.
“왜 이렇게 내 속을 긁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가족들마저 나를 자극하고 있어.”
“나도 화내고 싶지 않은데, 왜들 이렇게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거야?”
사실은 내 마음에 수납공간이 넉넉하지 않아서일 수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비롯됐는데, ‘밖으로 움직여 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는 고통과 고뇌, 그리고 눈에 거슬리는 것을 뜻하죠.
그러니까 ‘분노 감정’이란 내 속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보기 싫은 것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분노 감정’ 자체가 나쁜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살다 보면 내 눈에 즐거운 일들만 일어날 리 없고, 내 마음에 평화로운 것들만 경험되지는 않을 겁니다. 보기 싫고 거슬리는 일들도 생기고, 마음을 콕콕 찌르는 고통과 고뇌도 만나겠죠. 그럴 때마다, 내가 이 감정에 굳이 휘둘릴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마음의 서랍에 담아두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화나 분노 감정이 없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그보다는 화와 분노를 자연스러운 내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연습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자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