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계획대로,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선배 엄마들의 조언과 넘쳐나는 육아 정보로 머릿속은 이론으로 가득했지만, 정작 내 아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의 아이와 내 아이가 달라서인지, 내가 엄마로서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매 순간 혼란스럽다.
수면 분리, 자기 주도 식습관, 만 두 살 이후 영상 노출, 책육아, 엄마표 영어...
나는 대부분 지켜내지 못했다. 아이와 노는 시간조차 생각처럼 흐르지 않았고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들의 연속이다.
도대체, 둘, 셋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
“◇◇는 하루에 책을 몇 권씩 읽는다더라.”
“○○이는 벌써 숫자를 다 센대.”
“영어는 집에서 꾸준히 노출시켜야 해요. 엄마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아이를 키우며 이런 말들이 사방에서 들려오면 나는 팔랑귀가 되어 흔들리지만, 결국 열정맘들을 따라가지 못한 채 조바심만 더해진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육아에 진심일 수 있을까.
나는 퇴근 후 아이와 놀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말이다. 무탈히 잘 자라주는 아이에게 고마우면서도, 허술한 엄마 탓에 뒤처지지는 않을까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아이를 품기 전, 내가 바랐던 건 오직 하나였다.
아이의 건강. 몸도 마음도 온전하길 빌었다.
심리미술을 접하며 예기치 못한 사고나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보았기에 그 바람은 더 간절했다.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나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또 다른 불안이 밀려든다.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어디로 튈지 몰라 늘 긴장 상태이다. 폰에 어린이집이나 친정엄마의 이름이 뜨기라도 하면 가슴부터 조여 온다.
아이는 점점 더 자기 주관이 생기고, 스스로 하려는 의지도 강해졌다. 그럴수록 통제되지 않는 순간이 늘어난다. 내 눈엔 여전히 작디작은 아이인데, 혼자 해내려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불안하다.
위험에 노출되거나 감당 못할 상황이 생기면, 어느 정도의 개입과 통제가 적당할지 수없이 갈등하고 흔들린다.
아이와 부모 저마다 다 다른데 과연 재단이 가능할까.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가고 있을까.
이런 무수한 고민은 결국, 고민일 뿐.
곤히 잠든 아이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음에 감사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이미 엄마잖아.
생각보다 나는 잘하고 있는지도 몰라.
오늘도 무탈히 살아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