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사이 #004
그동안은 종이로도 충분했다.
구겨져도, 접혀도, 버려져도 괜찮은 것들.
마음껏 문지르고 칠하고 덮으며 색이 섞이는 과정을 받아들이기에는 도화지면 충분했다.
27개월.
이제는 하나둘 결과물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남길 것’을 염두에 두고 캔버스를 준비한 날이었다.
물감은 익숙한 것 그대로였다.
다만 한 번에 여러 색을 주지는 않았다.
팔레트에서 색을 섞다 장난으로 번질까 염려되어, 나는 아이에게 묻고 아이가 고른 색을 하나씩 짜주었다.
순서를 지키는 방식이 아이를 가두지 않기를, 혼색을 늦추는 대신 스스로 선택하며 나아가길 바랐다.
아이의 손은 캔버스를 천천히 채워갔다.
빈틈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색은 덮이고 또 덮였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는 이날의 목표는 뜻밖에도 자연스럽게 충족되었다.
마무리를 위해 새로운 재료로 반짝이풀을 더했다.
이제 끝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반짝이풀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더더더.”
조절은커녕 통제되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시작한 듯 듬뿍 짜 부으며 반짝반짝 예쁘다며 신이 났다.
마무리를 위한 재료가, 기껏 순차적으로 쌓아온 색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멈춰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내 눈에 괜찮아 보이는 결과물을 남기고 싶은 마음과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다짐이 부딪혔다.
결국 멈추지 않았다.
반짝임은 번졌고, 색은 다시 섞였다.
처음 계획했던 ‘결과물’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캔버스 위에는 분명한 무언가가 남았다.
아이의 손이 지나간 흔적과, 내가 끝내 멈추게 하지 않았던 선택까지 포함된 결과물이었다.
41개월이 된 지금도 아이는 이 그림을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며 소중히 여긴다.
제목도, 무엇을 그렸는지도 알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 하나가 아이에게는 꽤 큰 성취감으로 남았던 게 아닐까.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사이’의 시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