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켜야 할 자리

그리는 사이 #003

by 온아

업으로 아이들을 만날 때는 속도 조절이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이 저지르는 속도와 어질러지는 정도,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까지 미리 그려두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아이 앞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마음껏 저지르게 두어야 하나 싶다가도 집이라는 공간이 먼저 떠올랐다.
치워야 할 바닥과 테이블, 남아 있을 흔적들.
그 생각이 말을 먼저 밀어냈다.


그만.
잠깐.
안돼.
멈춰.


순간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들은 아이를 향한 지시이기도 했고, 나 자신을 향한 경고 같기도 했다.


이렇게 자주 멈추게 하면서 내가 하려던 엄마표 미술은 과연 이것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말을 되도록 참았다.
아이의 손을 막지 않으려, 말을 삼키며 가만히.


아이의 손이 흔들리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잠시 멈춰도 나는 그 틈을 건드리지 않았다.


말이 없자, 아이는 나를 한 번 바라봤다.
손을 다시 움직이기 전, 먼저 나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에는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자기 방식으로 그 시간을 이어갔다.


끝까지 해냈다고 부르기엔 애매한 시간이었고, 깔끔하게 정리된 결과도 없었다.

다만 이날은, 내가 개입하지 않았던 몇 초가 생각보다 길게 남았다.


아이와 미술을 하는 동안,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골라내며 아이보다 먼저 내 쪽에서 숨을 고르게 되는 날이었다.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사이’의 시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