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사이 #010
욕실에서의 미술놀이는 대개 목욕 전, 아이가 먼저 “물감 놀이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날에 이루어졌다.
준비는 신속하고 단순해졌다.
물감, 버블폼, 워셔블 크레용.
무엇을 하든 결국 물로 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공간을 조금 더 과감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발산이 전부였다.
물감과 거품을 마구 문지르고,
벽과 바닥을 같은 표정으로 칠하고,
손바닥 도장을 찍고,
스펀지를 눌러 찍고,
크레용을 긋고.
그리는 동안은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마지막은 늘 같았다.
스스로 지우기.
욕실은 ‘그려도 되는 곳’이 아니라 ‘지워질 수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아이는 더 마음 놓고 움직였다.
몇 번의 경험이 쌓이자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그날의 도구를 스스로 고르기 시작했다.
무엇을 쓰든 상관없던 손이, “오늘은 이걸로”라고 선택을 갖게 된 것이다.
팔레트가 먼저 놓이고 아이는 여러 가지 색을 '차례로' 담아 달라고 했다.
파랑과 빨강을 섞어보며 한참을 바라보더니, 내게 묻는다.
“어때? 예쁜 색이지?”
몇 번의 붓질 뒤, 아이는 다시 멈췄다.
“손으로 해도 돼?”
나는 “안 돼” 대신 이렇게 답했다.
“좋아. 대신 손으로 하고, 다시 붓이나 다른 걸 쓰고 싶으면 말해줘. 손 씻고 바꾸자.”
욕실에서 만들어진 규칙은 금지가 아니라 순서였다.
붓으로 시작하고, 손을 허락받고, 도구를 바꾸기 위해 손을 씻고, 다시 그리기.
아이에게 그 순서는 통제가 아니라 ‘내가 선택
한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이날 놀라웠던 건 집중의 자세였다.
아이는 높이 그릴 때만 잠깐 일어섰고, 대부분은 앉아서 벽을 마주했다.
손이 먼저 나가던 아이가, 오늘은 벽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 옆에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방향을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만든 방향을 넓히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뭐 그리는 거야?”
“바다.”
바다라는 말에 기대어 물고기와 산호를 형태로 곁들여 주었다.
아이의 세계를 내 쪽으로 끌어오지 않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더 멀리 갈 수 있길 바랐다.
다행히도, 바다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깊어졌다.
아이는 해파리를 그리며 다리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아홉, 열.”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해파리 다리가 열 개야? 오징어처럼?”
아이는 자기 이야기로 답했다.
“대왕오징어처럼 다리가 열 개인 해파리야. 지구에서 발견된 물고기야.”
“죽고 죽고 죽어서 오래 오래 되어서 화석이 됐어.”
이야기는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말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 말들의 정확함을 확인하기보다, 아이가 숫자와 상상과 지식을 한 장면에 붙이는 방식을 바라봤다.
욕실의 벽은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는 판이 되었다.
욕실에서 미술놀이는 마무리가 중요하다.
아이가 “다 그렸어”라고 선언하면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기록이 생기자 사라짐도 덜 아쉬워졌다.
사진을 보여준 뒤 제목을 정하고, 아이에게 샤워기를 건넸다.
아이가 직접 물줄기를 조절하며 벽을 씻어냈다.
파랑이 흐르고, 초록이 얇아지고, 선들이 투명해졌다.
자신이 만든 것을 자신이 지우는 일.
발산에서 조절까지 내가 생각한 퍼포먼스미술이 완성되는 순간을 아이 곁에서 지켜보았다.
퍼포먼스미술이 발산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회수’가 필요하다.
준비, 선택, 그리기, 다시 해보기, 정리, 기록.
그리고 지우기까지.
욕실 벽화를 그리며 아이는 회수를 자기 손으로 해냈다.
그날의 그림은 사라졌지만, 아이에게는 “스스로 선택해 끝까지 해본 경험”이 남았다.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사이’의 시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