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사이 #011
어린이집에서 숲체험을 다녀온 날이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여러 곤충 모형 중 파란 나비 모형이 마음에 남았는지, 집에 와서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파란 나비가 갖고 싶어.”
처음에는 폰을 들어 검색부터 했다.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것이 맞는지 확인하며 잠시 사줄까 고민하다 생각을 바꿨다.
"엄마랑 같이 파란 나비 만들까?"
"어려울 거 같은데~"
"더 크고, 더 멋진 파랑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좋아!!"
갖고 싶은 것을 바로 손에 쥐여주는 대신, 만들어보는 쪽을 택했다.
나는 나비의 날개를 그려주었고, 아이는 그 위를 원하는 색으로 채웠다. 파랑을 바르고, 다른 색을 섞고, 반짝이풀도 올렸다.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며 쓰다 남은 클레이로 몸통을 만들었다. 몸통을 만들며 곤충은 머리, 가슴, 배로 구성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들어진 몸통에 종이로 만든 날개와 더듬이를 꽂았다. 평면이던 것이 입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윤곽을 내어주고 재료를 건넸을 뿐인데, 아이는 색도, 꾸밈도 직접 선택하며 금세 자기 것으로 채워갔다.
작고, 큰 두 마리의 나비를 만들고도 아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은 클레이로 나비를 더 꾸며주고 잠자리도 만들겠다 했다.
"말라서 단단해지면 친구 할 거야"
아이에게 나비는 완성된 결과물에 그치지 않고, 이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원하는 것을 만들었다는 만족을 넘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간 셈이다.
이 활동에는 생각보다 많은 단계가 들어 있다.
기억을 떠올리고,
원한다 말하고,
직접 만들 것을 선택하고,
형태를 따라가며 색을 입히고,
말리는 시간을 견디고,
몸통을 만들고,
조립하고,
꾸밈을 추가하며 완성을 결정하기.
아이는 그 순서를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꽤나 긴 시간을 만들기에 집중하며 중간에 흥미를 잃지 않았다.
원하는 대상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려는 마음, 완성된 것을 명명하며, 하나를 만들고 또 다른 존재를 더해 이야기를 확장하는 태도.
나비를 만들던 손은 조급하지 않았다.
색을 칠할 때도, 클레이를 조몰락거릴 때도, 아이는 자기 속도로 차근히 나아갔다.
결과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 지금 손에 닿는 감각과 변해가는 모양을 충분히 즐기는 듯했다.
누군가가 만든 것을 소비하는 대신, 만들어내는 과정 전체를 직접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경험.
어쩌면 이 시간은 갖고 싶었던 것을 본인 손으로 만들어 갖게 되는 경험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조금 더 가 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바탕을 그려주고, 재료를 내어주고, 기다려주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만 손을 내어주니, 아이는 나비를 만든 데서 끝나지 않고 잠자리도 불러왔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만든 소중한 친구라 말한다. 만들기는 결국 관계를 배우는 일이기도 한가 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에 이름을 붙이고, 서로의 관계를 상상해 보며 그 안에서 아이는 자기 세계를 조금 더 넓혔을 것이다.
완성된 나비는 정말 예뻤다.
하지만 더 인상 깊었던 건, 그 나비를 들고 있던 아이의 표정이다.
스스로 만든 것을 지극히도 아끼는 얼굴.
그 얼굴이 나에겐 이날의 결과물이다.
이 활동은 단순한 만들기를 넘어, 보고 기억한 형태를 다시 구성하고, 여러 재료를 조합해 완성하는 과정 안에서 인지와 창의가 함께 작동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결과물에 감정을 붙이고 “친구”라는 관계를 만들어낸 순간, 표현은 놀이를 넘어 정서와 사회성의 언어가 되었다.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사이’의 시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