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꿈꾸며 산다

'워킹맘’ 이전에 '나'란 사람이 있다

by 온아

'한국에서의 삶'에 관한 기록

Mission. 한국의 교육시스템이나 사회적 구조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했던 일들이 있었다. 오래된 것이라 말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차별과 강요들.


그럼에도 나는, 꿈꾸며 살아가고 싶다.


‘워킹맘’ 이전에 '나'란 사람이 있다


요즘이 어느 세상이냐며 남존여비니 남녀 차별이니 다 옛이야기라고, 지금은 그러면 큰일 난다 입 모아 말하지만 내가 태어난 80년대에는 일상다반사였고 나조차 세상이 많이 변했다 생각한 현재 이 시점에도 알게 모르게 남아있다.

유교사상으로 남자를 높고 귀히 여기는 문화는 내 주변에 유독 뿌리 깊이 박혀있었다.
어려서는 남동생이 태어나며 할머니의 온도차에서 남존여비를 느꼈고, 아빠의 잘못을 참지 못한 엄마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날선 말들에 남녀 차별을 체감했다. 어쩌면 다행히도, 그 시절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이혼 후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엄마의 영향으로 그나마 자존감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중고 시절엔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말을 예쁘게 해야 된다든가, 엄마 일을 잘 도와야 한다던가, 몸을 단정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며
“여자니까”를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대학 시절엔 연구실에서 고장 난 문고리를 고치거나 전구를 갈 때면 “여자가 이런 걸 잘하네”라는 말이 칭찬인지 핀잔인지 모를 소리로 돌아왔다. 사회에 나와서도 워크숍이나 행사 때 여직원들이 다과나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시간들 속에서 나 또한 무뎌져
남녀 차별이 아닌 단순한 역할의 차이라고 납득하며 익숙해졌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감내하고 배려하는 시대는 아니라 생각했다.

엄마가 딸인 나에게만 유독 남 눈치 보지 말고 하고픈 거 하며 살아라 당부했던 것처럼 여자 후배들에게는 남녀를 떠나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커피를 타거나 술을 따르는 일은 되도록 하지 말라 당부한다.

연차가 쌓이며 남자 직원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야근과 철야를 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진급했다 생각했다. 30대에 접어들자 이직 면접에서는 결혼할 예정인지, 결혼하면 신혼여행 기간과 출산휴가, 육아휴직 여부까지도 꼬치꼬치 물었다.
결코 여자만 해당되지는 않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들을 들어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 판단 당했고 동급 경력직 남자 직원과 연봉에 차이를 둠에 나의 포부는 감안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꿈이 있었기에 참고 버텼다.

결혼과 출산 후 이직할 때는 아이가 어린데 회사 생활에는 집중할 수 있는지, 아이를 봐주는 분은 있는지를 물었다.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질문들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여자는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선택을 강요받는다. 워킹맘은 슈퍼우먼인 척하며 가정도 꿈도 일정 부분 내려놔야 했다. 문득, 지금 다니는 직장이 나의 꿈이었는지,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기 위함인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헷갈린다. 가정과 직장, 두 세계를 오가며 어느 한쪽도 완벽히 해낼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결혼을 하며 남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 밥을 잘 챙겨 먹이라 당부하시고, 손주는 아들 손주를 보고 싶다 하시며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하셨다. 출산 후 처음 마주했을 때 나에게 고생했다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누워있는 아들 손주에게 다가가 기쁨을 표하셨다. 그 모습 위로 어릴 적, 할머니를 부르며 마당에 들어서는 일곱살이었던 나를 지나쳐 아장아장 걸어들어오는 두살 남동생에게 맨발로 달려나가 안고 들어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중장년층이 된 내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얼마나 더 이러한 부당함 앞에 설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여기서 더 무뎌져 역할이나 위치에 눌려 나 자신을 잃지는 않았으면 한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집안의 며느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고
여전히 꿈이 있는 한 사람이다.

지금의 나를 정의하는 ‘워킹맘’이라는 세 글자를
단순히 일하는 엄마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엄마로서 역할도 하며 자신의 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라고 워킹맘인 나 자신을 독려한다. 아이를 이유로 누구 엄마만 남지 않도록, 나를 잃지 않도록.

일을 한다는 것이 온전히 나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업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기에 나로서 내일을 살아가는 목표가 생긴다.

아이에게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투영하는 일은 없도록 나는 나의 업을 지키고 싶다.

당신이 꿈꾸는 보통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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