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에 맞춰 빛을 잃어가는 아이들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할 교육의 현장에서, 부모의 욕망과 사회의 기준이 먼저 줄을 세운다. 마음의 건강보다 선행학습이 우선이 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었다.
기준에 맞춰 빛을 잃어가는 아이들
임신을 준비하며 나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그려보았지만 답답함만으로 가득 찼다.
적어도 나의 아이와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마음 건강한 아이들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어 심리미술을 공부하고 준비해 미술 학원을 개원했다. 나와 같은 뜻을 가진, 필요로 하지만 적정 교육기관이 없어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 이상으로 견고했다.
여전히 미술을 포함한 예체능은 여유가 될 때, 아이가 원해서, 기한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로 한정된 선택 교과였다.
나는 면역력 저하를 막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비타민을 포함한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듯, 마음 면역력과 건강한 감정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미술이 가장 적합한 영양제라 여겼지만 대부분의 부모들 생각은 달랐다.
마음이 단련되어야 기나긴 입시 준비에도 견뎌낼 수 있음을 간과한 채 당장의 영어, 수학 선행에 앞다투어 자리를 맡았다. 경기가 악화되며 교육부에서조차 예체능 교육 예산을 줄이고 학부모들의 지갑도 닫혔다.
심리미술 교육을 업으로 이어가기에는 자원봉사나 다름없는 현실이었다. 결국 나는 업으로는 포기하고 내 아이만이라도 조금은 달리 키우리라 마음 다잡았다.
사람은 각자 다른 빛깔을 가지고 태어난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처럼 다채로운 색상들이 어우러지며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단 하나의 색, 오직 빨강만을 원한다.
더 선명한 빨강, 더 진한 빨강을 위해 나머지 색들은 기준에 맞춰 변하고 적응하라고 강요한다.
아이들은 줄을 서며 자신의 빛깔을 잃고, 어른들은 익숙한 시스템 속에서 그 과정을 되풀이한다.
여기서 악당은 누구일까.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어른들일까.
아니면 이런 문화를 조장하고 유지해 온 보이지 않는 세력일까.
어른들은 “나도 겪어왔던 과정이고 누구나 겪는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이에게 더 나은 줄을 서도록, 더 앞선 자리를 차지하도록 가르친다.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서도 사회에 나가면 수많은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학벌, 소득, 직위라는 잣대에 맞춰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된다.
최근의 우리나라 교육은 창의적 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또 다른 방식의 줄 세우기를 조장할 뿐이다.
교육과정을 개편해도 입시 제도는 큰 틀에서는 바뀌지 않고, 새로운 평가 기준이 생겨 결국 그 안에서는 또다시 서열이 매겨진다. 창의성을 키우겠다며 창의적인 방법으로 줄을 세운다.
결국, 줄 서기가 줄 세우기로, 줄 세우기가 끝없는 경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쯤 되면 질서를 지키고 규칙을 따르는 것은 분명 중요한 시민의식임에도 한국 사회에서의 줄 서기 문화는 긍정적인 가치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등수를 매기는 경쟁을 당연시하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고유한 빛깔을 잃게 만든다면 우리는 이 시스템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틀을 깨고 벗어나 자신의 색을 찾아갈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시대가 왔다 말은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행복지수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언젠가 각자의 색채로 빛날 수 있는 세상이 올진 모르겠으나 굳이 빛나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줄 서기 문화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자신의 색을 인정받으며 조금은 자유롭게 꿈꿀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당신이 꿈꾸는 보통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