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나무 1

엄마의 그늘

by 온아

'한국에서의 삶'에 관한 기록

Mission. 한국인의 뻔한 일상과 앞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


믿고 기댈 수 있는 나무 같은 존재가 있을까.
나에겐 없다고 여겨 스스로 그 나무가 되려 했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의 그늘 아래 있었다.


엄마의 그늘


살아오며 나는 늘 나무 같은 존재를 그렸다.

어려서는 엄마가 나의 나무라 여겼지만, 그녀의 삶도 녹록지 않았기에 철이 들면서 더 이상은 짐이 되지 않으려 스스로 나무가 되기로 했다.

연애를 하며 종종 상대방이 나의 나무가 되어주지는 않을까 기대는 마음을 가져보기도 하였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한때는 그 이유가 아빠의 부재로 남자에 대한 불신이 깊어 그런 것은 아닌가, 나는 평생을 불안한 존재로 살아야는 가 고심했다. 스스로 나무가 되려 한 삶의 방식들과 태도가 나를 쉽게 움직여지지 않도록 뿌리내리게 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그 뿌리를 들춰내지도 줄기를 흔들지도 않고 그저 나란히 옆에 서 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같은 전공에 같은 일을 했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민도 깊었다. 더구나 각자의 집안 사정으로 홀로서기해 독립적이었고, 나는 꽤나 진지하고 무거운 반면, 그는 밝고 가벼워 함께하는 시간이 유쾌했다.

그의 어머니가 나를 마음에 차지 않아 함을 알았지만 살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다 보면 이해받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편을 믿기보다는 짧지 않은 시간을 혼자서 잘 해내온 나 자신을 믿었다.


과신이었음을, 오판이었음을 안 것은 이미 결혼한 이후였다. 남편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원가족과의 사이에선 답답하고 미련했다.

시댁 식구들과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생각과 상처가 되는 언어들을 가슴에 담아 묵혔다. 때때로 남편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화도 내보며 불만을 터트렸지만 그뿐이었다. 착한 아들인 남편은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채 방관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 선택이었고,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 다짐했기에 눈물을 삼키며 참았다.


어쩌면 세상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동경했을 뿐, 믿고 의지하는 나무 같은 존재는 오래전 엄마의 엄마, 그 이전에도 존재하지는 않았을 거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했다. 점점 더 나의 결혼 생활은 엄마가 과거에 겪었던 모습과 닮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길 간절히 바랐건만 점점 더 닮을 꼴이 되어가는 딸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수만 가지 생각들이 스쳤을 것이다.

결혼 생각 없다던 딸이 갑작스레 결혼한다 했을 때,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뜯어말리고 싶었을 테다. 자신과는 이미 오래전 남이 된, 딸과도 연 끊은 아버지란 사람 이름 공란이 체면을 상하게 한다 하여 두 개의 청첩장을 만든다 했을 때, 그때라도 파투를 냈어야 했다 되새김질하셨을 것이다.

시작부터 보였는데 그저 서로 좋다고 잘 살겠다고 말하는 반듯한 사위와 딸의 모습에 “너희 좋을 대로 해라” 했던 자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맞벌이하는 딸 내외보다 자신을 더 따르고 의지하는 외손주를 앞에 두고 엄마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어머니의 시한폭탄 같은 발언에 분노를 터트린 적도 있으셨다. 결국은 참아 넘기시고 “너희만 사이좋게 잘 살면 된다” 되려 나를 달래셨다.


엄마의 삶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자유로이 살겠다 했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일까.

변명을 하자면 태어나 울고 먹고 자고, 자라나 서고 걷고 달리는 당연한 수순들을 답습하듯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순서대로 중요한 결정들을 하며 삶을 이어가지 않는가.

나 또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도 벗어나려 했던 엄마의 그늘에서 다시 몸을 웅크렸다. 여전히 그 그늘은 나를 있는 그대로 감싸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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