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감사가 만드는 선순환
마라톤을 완주하고 돌아온 날, 그 뜨거운 감정이 채 식기 전에 내 사진을 보고 싶다.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달리던 모습, 완주 후 터져나온 환호.
그런데 현실은 수천 장의 사진 속에서 내 사진을 찾는 데 최소 1시간. 찾았다 해도 이게 전부인지 알 수 없다. 며칠이 지나면 그때의 감정은 희미해지고, 대회 당일에 받아보는 사진과 한 달 뒤에 받아보는 사진은 같은 사진이어도 그 무게가 다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워심볼을 만들었고, AI 얼굴 검색으로 1초 만에 내 사진을 찾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이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아워심볼에는 사진을 한 번이라도 전달해주신 사진작가분들이 400명이 넘는다.
대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SNS에 멋진 사진을 올린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역동적으로 달리는 모습, 기쁨의 표정. 좋아요가 쌓이고 댓글이 달린다. "멋있다", "나도 다음에 뛰어봐야지."
그런데 그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참가자 입장에서는 여러 작가의 사진이 섞인 링크를 전달받고, 수천 장을 뒤져 겨우 내 사진을 찾고 나면, 정작 이 사진을 누가 찍어줬는지 자체를 알 수 없었다. 알더라도 댓글 하나 남기는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SSRC(성수러닝크루)를 7년째 운영하면서 이걸 가까이에서 봐왔다. 크루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작가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런 보수 없이 매 세션에 나와 촬영하고, 수천 장의 사진을 고르고, 편집까지 해서 전달했다. 크루원들도 고마워했다. 근데 그 고마움이 "사진 잘 봤어요!"라는 한마디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은 있는데 표현할 수 있는 구조가 없었던 것이다.
마라톤 대회도 마찬가지다. 새벽부터 코스 곳곳에 자리를 잡고, 수시간 동안 서서, 수천 장의 사진을 찍는 작가들. 이분들 대부분은 별도의 보수 없이 활동하고 있다. 순수하게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그 열정이 멋있어서.
2024 JTBC 마라톤 한 대회에서만 155명의 작가님들이 410,605장의 사진을 공유해주셨다. 이 사진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기존 프로세스를 들여다보면 정말 고된 과정의 연속이었다.
촬영 후 수천 장의 사진을 셀렉하고 보정하는 작업. 구글 드라이브나 네이버 클라우드에 올려서 링크를 공유하는 방식. 링크가 만료되거나 권한 설정이 꼬이거나 폴더 구조가 너무 깊어서 다운로드가 도중에 끊기는 일도 반복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노력을 들여 사진을 공유해도 그 사진이 누가 찍었는지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참가자들은 사진을 다운받아 SNS에 올리지만, 촬영자가 누구인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워터마크를 넣으면 되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작가들도 알고 있었다. 사진을 받는 사람들이 워터마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걸.
처음에 아워심볼은 작가분들로부터 사진 링크를 전달받아 직접 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작가의 불편함을 줄여주고 싶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운영팀이 밤을 새우며 사진을 처리하는 구조였다.
다음 단계로 작가분들이 직접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작가 전용 어드민 페이지를 만들었다. 더 이상 링크를 주고받을 필요 없이, 작가가 직접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인덱싱되고 참가자에게 전달된다. 작가 프로필이 사진과 함께 표시되어 누가 찍었는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순간을 담아준 작가에게 직접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도네이션 기능을 만들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보이게 되었고,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오픈소스 문화에 익숙했다. 누군가가 만든 라이브러리를 아무런 비용 없이 사용하고, 그 위에 내 서비스를 쌓는다. 그런 생태계 속에서 "Buy Me a Coffee"라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내가 사용한 서비스가 좋으면, 만든 사람에게 커피 한 잔 값을 보내는 것. 의무가 아니라 감사의 표현이다. 나도 좋은 오픈소스를 만나면 커피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건 단순한 결제가 아니라 "당신이 만든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됐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아워심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진 너무 잘 찍어주셨는데, 커피라도 보내드릴 수 있나요?"
참가자들이 직접 물어오는 것이다.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문화도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사실 팁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자란 나에게, 미국에서 생활할 때 처음 팁을 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솔직히 추가 비용처럼 느껴졌다. 왜 서비스 가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팁의 본질은 추가 비용이 아니라, 상대방이 제공해준 가치에 대한 보답이었다. 좋은 서비스를 받았을 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아워심볼의 도네이션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을 구매하는 거래가 아니다. "당신이 찍어준 사진 덕분에 내 순간이 기록됐다"는 감사의 표현이다.
참가자는 "결제를 했다"가 아니라 "사진 덕분에 고마워서 응원했다"고 느낀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사실 꽤 높은 수준의 문화적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노력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건 쉽지 않다. 좋은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과, 그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직접 감사를 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아워심볼에서 도네이션이 만들어지면 작가들은 자신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장수나 다운로드 수로만 측정되던 활동이, 실제 감사의 표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인정과 감사가 오가는 생태계의 시작이다.
브런치 첫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타깃 고객이 있고 그 타깃이 정말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필요한 사람들끼리 알아서 입소문내어 공유하고 사용한다."
아워심볼의 생태계도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 좋은 이벤트가 만들어지고, 참가자가 모이고, 작가가 순간을 기록하고, 그 콘텐츠가 공유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건강한 FOMO가 만들어진다.
이 선순환의 핵심에 작가가 있다. 작가가 없으면 사진이 없고, 사진이 없으면 순간이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순간은 공유되지 않는다.
공유되지 않으면 새로운 도전도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들의 활동이 지속되려면, 그 활동에 대한 인정과 감사가 있어야 한다. 도네이션은 그 인정의 가장 직접적인 형태다.
좋은 콘텐츠가 잘 돌면 더 좋은 스포츠 문화가 만들어진다. 더 좋은 스포츠 문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결국 커피 한 잔의 감사가 누군가를 달리게 만든다.
아워심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열정적인 순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그 순간을 담는 사람들이 더 오래, 더 즐겁게 활동할 수 있길.
그래서 우리는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당신의 순간을 담아준 작가에게, 커피 한 잔의 마음을 전해보세요.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스포츠가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