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도 벗고, 나도 벗고, 이제는 박수 칠 차례
동생이 오랜만에 뮤지컬을 보자고 했다.
“언니, 이건 꼭 봐야 돼. 팬텀 10주년이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뮤지컬은 1년 만이었고, ‘나도 문화생활 좀 해야지’ 하는 마음도 살짝 있었다.
그리고 표를 예매하고 나서 이 날의 팬텀인 전동석 배우의 얼굴을 검색했다.
‘와우 잘생겼다! 이런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다고?!’
그때부터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언제 가면을 벗나.’
무대는 화려했고, 노래는 더 화려했다.
특히 크리스틴의 목소리는 숨이 멎을 만큼 맑았다.
그녀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이, 그 노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팬텀은 그 목소리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크리스틴을 지하에 가두고, 그걸 사랑이라 불렀다.
나는 그 장면이 좀 불편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 아닌가?’
그러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도, 나도, 너무 오래 가면을 쓰다 보면 벗는 법을 잊어버리니까.
하지만… 잘생긴 얼굴을 왜 가린 건지는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연 내내 은근히 기대했다. 혹시라도 노래하다가 벗지 않을까?
커튼콜에는 벗겠지?
하지만 공연 시간의 99.9% 동안 그는 철벽같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내 아쉬웠다.
‘잘생긴 배우를 데려다 놓고 얼굴을 가리다니. 가면 값이 더 비싸겠네.’
그리고 마지막 커튼콜.
조명이 꺼지기 직전, 전동석 팬텀이 가면을 벗었다.
그 0.1초 동안 드러난 얼굴에, 객석에서 비명이 터졌다.
손뼉 치며 얌전히 있던 사람들의 본능이 폭발했다.
그 장면이 너무 웃겼다.
‘아까는 사랑의 비극에 울더니, 얼굴 보이자마자 아이돌 콘서트네.’
나도 웃음을 꾹 참다가 결국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도 매일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네.
사실 우리는 회사 면접 때부터 가면을, 아니 마스크를 쓴다.
나는 그 면접용 마스크를 얼마나 공들여 준비했는지 모른다.
‘당차 보이지만 얌전한 표정’, ‘적당히 웃지만 가볍지 않은 말투’, ‘열정적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태도’.
그때는 마스크가 얼굴에 착 달라붙어야 합격할 것 같았다.
그 마스크가 지금은 흰색 마스크가 되었다.
아침 출근길, 선크림만 바르고 마스크를 쓴다.
회사에 도착해서야 입술을 바르고 눈썹을 그린다.
어떤 날은 아프지도 않은데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쓴다.
오늘따라 표정을 숨기고 싶어서.
그냥, 그게 편하니까.
다만 여름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버티는 건 거의 고문이라,
요즘은 조금 더 부지런히 아침에 입술을 바르고 눈썹을 그린다.
그러면서 문득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나도 조금씩 가면을 벗고 있네?’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변한 건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가면이든, 마스크든, 벗어도 괜찮은 내가 되면 된다는 걸.
그리고 혹시라도 그 얼굴을 보고 누군가 놀라든, 비명을 지르든,
이제는 이렇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 얼굴인데. 자, 이제 박수 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