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양갈래 머리와 청춘의 디즈니랜드
스물아홉.
마지막 20대.
그때의 나는 뭐든 “지금 아니면 못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친구와 아주 비장한 회의를 했다.
“우리… 양갈래 하고 가자.”
“좋아. 서른 넘으면 못 하지.”
그렇게 결론이 났다.
양갈래 머리에 미니마우스 머리띠까지 풀세트로 준비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지금 아니면 못 하니까.
우린 상해로 여행을 떠났고, 그중 하루를 디즈니랜드에 썼다.
지하철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꽃과 나무 사이로 거대하고 반짝이는 성이 나타났다.
성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어서 와. 여기서 사진 안 찍고 가면 삐진다?”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우리는 성 앞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내 사진도 한가득이었다.
지금 보면 참 진지하게도 빌었더라.
뭘 그렇게 빌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아마도 이랬을 거다.
“앞으로도 이렇게 웃고 싶습니다. 소녀 감성 잃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제발 오늘 찍은 사진 중 하나라도 건질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릴 적 나는 인어공주 비디오를 보고 포크로 머리를 빗어봤고, 백설공주를 보고 새들과 노래를 불러본 적도 있다.
누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남들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디즈니는 내 상상력과 소녀 감성을 길러낸 주범이다.
그 감정을 숨기며 살았지만, 그날 디즈니랜드 안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사진 속의 나는 해맑고, 어설프고, 조금 민망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야… 우리 좀 심하지 않아?”
“아니. 지금 아니면 못 해.”
사진을 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서툴고 엉성했지만, 이상하게 더 빛났다.
화장은 진했지만 눈빛은 순했고, 포즈는 어설펐지만 그게 오히려 귀여웠다.
그땐 그게 예쁜 줄도 모르고 더 꾸미려 애썼는데, 지금 보니 충분히 빛났더라.
청춘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다. 모를 때 더 예쁜 거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를 본다.
서툴고 어설픈 애들이 비장하게 연애하겠다고 나서지만, 정작 자기 마음도 모른 채 빙빙 돌다가 결국엔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간질간질해서 괜히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 문득, 나도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까지 못난 줄 모르고 저러는 게 청춘이지…’
문득, 첫 회사에서 만난 상사가 떠올랐다.
30대 중후반쯤 된 분이었는데, 카톡 프로필 사진이 미니마우스였다.
그땐 속으로 ‘아니, 나이에 맞게 좀 하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분의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소녀다.
여전히 디즈니 영화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몰래 핑크빛 아이템 하나쯤 숨겨놓고 쓴다.
아마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거다.
어른인 척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공주놀이를 하는 것.
그리고 아무도 안 볼 때 슬쩍 꺼내보는 것.
그 친구랑 다시 시간이 맞으면, 이번엔 미국 오리지널 디즈니랜드에 가서 더 과감하게, 더 웃기게, 더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이제는 또 다른 강박이 생기겠지.
“그래도 아직 30대니까. 아직 젊잖아? 40 넘어서 이러면 좀… 창피하잖아?”
머리띠와 왕관은 기본이고, 이번엔 의상까지 더 과하게 입고 싶다.
아시아가 아니고 미국이니까. 누가 알겠어?
그러니 시간이 서로 맞는 날이 조만간 왔으면 좋겠다.
양갈래 한 번 더 하고 미국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