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오스트리아, 오페라는 실패 슈니첼은 성공

웃음으로 채운 로맨틱 여행기

by 온빛

1. 비포 선라이즈, 그런데 우리는 선셋

(왼)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 가는 기차 안, 대학생처럼 보이는 친구들이 기차 안에서 계속 대화를 나눠서 더 영화 느낌이 났다, (오)비포선라이즈 속 장소, 우리 빼고 다 커플이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속 장면을 따라 걷게 될 줄은 몰랐다.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로 향하는 기차, 연인들의 눈빛, 낯선 설렘. 사실 여행의 시작은 단순했다. 친구와 항공권을 검색하다가 가장 저렴한 노선이 눈에 띄었고, 10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결제해 버린 것. 하지만 그 단순한 선택이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장면들을 남겼다.


실제로 부다페스트 기차역에 도착하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허리 꺾은 딥 키스 커플들이 줄줄이 등장했고, 우리는 “야, 여긴 남자랑 오는 곳이네” 하고 웃었다. 동시에 기분이 묘하게 들뜨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확실히 사랑이 넘치는 나라였다.






2. 백조가 헤엄치고, 우리는 맥주를

잘츠부르크를 지나 도착한 할슈타트 호수에서는 진짜 백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백조의 호수.’ 호수 물빛과 백조의 깃털이 너무도 조화로워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다. 이 평화가 백조의 호수 발레 장면을 상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후 산악열차를 타고 알프스에 오르니 풍경은 또 다른 세계였다. 눈앞 가득 초록 들판과 설산이 펼쳐지고,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 그 자리에서 풍경을 안주 삼아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어버지 친구분들의 모습이 좋아 보여서 사진에 살짝 담았다. 평온하게 풍경을 바라보시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나중에 저렇게 나이 들어서도 예쁜 풍경 보러 다녀야지!’ 다짐했다.






3. 슈니첼엔 잼, 왜 맛있지?

잘츠부르크에서 맛본 음식들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슈니첼을 주문하면 접시 옆에 링곤베리 잼이 함께 나왔다. 처음엔 ‘돈가스에 잼이라니?’ 싶었지만, 바삭한 튀김과 달콤한 잼의 조합은 예상 밖의 조화였다. 단짠의 정석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양고기와 무화과잼 조합을 보며 ‘오스트리아가 먼저였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카이저슈마른(오스트리아식 팬케이크). 이름만 들으면 푹신하고 예쁠 것 같지만, 실제로 나온 건 케이크를 대충 찢어놓은 모양이었다. 한국식으로 치면 “비주얼은 망한 전.” 그런데 포크를 들어 한입 넣는 순간, 바삭함과 폭신함이 동시에 터졌다. 자두 콤포트와 함께 내오는데, 달콤 새콤한 소스가 식감과 잘 어울렸다.


거리에는 모차르트 초콜릿이 가득했고, 광장에서는 버스킹 음악이 울려 퍼졌다. 도시 전체가 리듬을 품고 있었다.






4. 오페라 대신 빵 터진 해프닝

비엔나에서는 큰 결심을 하고 오페라를 보기로 했다. 티켓값은 무려 30만 원. 친구와 온갖 포즈를 취하고 셀럽 흉내를 내며 사진도 수십 장 찍고, 들뜬 마음으로 입장하려는데 직원이 한마디 했다. “이거 어제 공연 티켓인데요.”


순간 정적. 둘 다 얼어붙었다. 어떻게 날짜를 착각할 수 있지? 결국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표를 흥정하는 외국인들에게 달려가 지갑을 털었다. 현금 40유로. 진짜 없는 척하면서 사정사정해 공연 시작 직전에 겨우 입장했다.


웅장한 내부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샹들리에가 빛나고, 무대 커튼이 천천히 오르는 순간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무대 위 현실은 달랐다. 배우들은 무표정, 의상은 마치 H&M 세일 코너에서 산 듯했고, 영어 자막은 “I love you”만 반복됐다. 내가 상상한 장엄한 오페라는 없었다. 결국 친구와 눈빛을 교환하고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첫 오페라 경험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조차 웃긴 추억이 됐다.






5. 클림트 퍼즐, 친구가 대신 맞춘 사연

내가 오래 좋아한 그림이 있다. 클림트의 <키스>. 집에는 1000피스 퍼즐도 있었다. 다만 내가 맞추지 못했을 뿐. 결국 친구가 코로나 격리될 때 심심풀이로 완성하고, 다시 내게 돌려줬다. 퍼즐은 내가 샀는데 맞춘 건 친구. 이 퍼즐을 맞춰준 친구와 우연히 같이 진짜 그림을 보게 된 것이다.


실제 작품을 마주한 순간은 전혀 달랐다. 화면 가득 번지는 금박, 인물들의 미묘한 표정, 깊은 색감이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작품은 비엔나 벨베데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모델의 정체는 확정되지 않았다. 클림트는 결혼하지 않았고, 평생의 동반자였던 에밀리 플뢰게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유명한 그림은 사진이나 퍼즐로는 대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배웠다.






6. 카페에서 한 모금, 19세기로 순간 이동

비엔나는 카페의 도시다. 영화 비포선라이즈에도 나온 카페 센트럴 앞은 밤에도 줄이 길었고, 미술사 박물관 카페 창가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한 잔은 여행의 피로를 단숨에 녹였다. 가볍게 곁들인 자허토르테는 진한 초콜릿과 살짝 쌉싸래한 맛이 어우러져, 커피와 완벽한 궁합을 이뤘다. 전통 카페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도시의 일상이 되었고, 잠시나마 19세기 빈의 살롱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7. 다음엔 오페라 말고 슈니첼

여행 마지막 날, 친구와 농담처럼 말했다. “한 5년 뒤에 다시 오자. 이번엔 오페라 표 날짜는 꼭 확인하고.”


둘이 폭소하며 다짐했다. 로맨틱 영화 속 장면들을 밟고, 백조를 바라보고, 클림트와 오페라 해프닝까지 덤으로 겪었던 여행. 오스트리아는 결국 사랑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더 단단해진 우정의 나라였다.


다음번엔 오페라는 과감히 건너뛰고, 대신 다른 집 슈니첼을 찾아 떠날 거다. 또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르지만 괜찮다. 웃으면서 추억할 거리가 하나 더 생기면 되니까. 그게 우리가 여행을 계속 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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