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잡지 못한 손, 남아 있는 기억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을 보며

by 온빛

"네가 건강하고 잘 나갈 때 내 생각은 했어? 내가 너를 욕할 수 있을 때 사과를 했어야지!"


드라마 속 절규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화면 속에서 두 친구는 죽음 앞에서야 진짜 우정을 확인했지만, 현실의 나는 그런 극적인 화해의 기회조차 놓쳐버렸다.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내가 놓아버린 친구의 손이 떠올랐다.




무심했던 나, 적극적이었던 너

고등학교 첫날. 나는 점심 메뉴나 궁금해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옆자리 친구는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랬어."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우정. 무심했던 나와 달리 적극적으로 다가온 덕분에 우리는 금세 단짝이 되었다.


친구네는 달랐다.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 언니는 명문대를 나와 아버지 회사에 입사. 집은 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반면 우리 집은 조용했다. 자격지심에 나는 단 한 번도 친구를 집에 초대하지 못했다. 그 친구가 우리 집 앞까지 따라와서도.


"야, 너네 집 구경 좀 시켜줘!" "... 오늘은 엄마가 안 계셔."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집에 계셨고, 나는 그저 비교당하기 싫었을 뿐이다.


친구는 키가 크고 하얗고 예뻤다. 늘 사람들을 웃기려 애쓰는 성격에 스튜어디스 같은 외모로 주목받았다. 미술 전공 준비로 학원에 다니는 친구 옆에서, "대학 가서 취미로 해라"는 부모님 말씀에 꿈을 접은 내 모습은 초라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했다. 매점 빵을 반씩 나눠 먹으며 깔깔 웃고, 수업 시간에 쪽지를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가까웠던 만큼 아팠던

대학에서는 더 가까워졌다. 옆 학교 덕분에 공강 때마다 만났고, 알바비를 모아 쇼핑하고, 제주도 여행도 함께했다. 하지만 점점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얘는 진짜 답답해. 맨날 우울하다고만 하고..."

"쟤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죽겠어."

"너는 그래도 괜찮잖아, 나는..."


친구의 하소연은 끝이 없었다. 처음엔 들어주고 위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웃으며 헤어져도 집에 돌아오면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결정적 순간은 그날이었다. 친구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자리에서 친구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 말을 쉽게 내뱉었다.

웃음 섞인 목소리였지만 가슴이 뜨거워졌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목이 메었다. '나는 그저 만만한 존재였나?'


그날 버스에서 창밖을 보며 눈물이 났다. 흘러가는 가로등들이 모두 흐릿하게 보였다.


그 뒤로 변했다.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너 요새 왜 이래?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것 같은데?"

"아니야, 별일 없어."

"거짓말하지 마! 우리 사이에 이런 게 어디 있어?"


친구는 배신감을 느꼈고, 나는 지쳤다. 우리는 그렇게 20대 후반에 끝났다.




5년 후, 다시 만난 우리

한참 뒤였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시기, 문득 그 친구가 떠올랐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


답장은 금방 왔다.


'너 진짜! 언제 연락할까 기다리고 있었어. 당장 만나자.'


다시 만난 친구는 더 힘들어 보였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연애 문제, 가족 갈등까지. 여전히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웠다.


처음 몇 번은 듣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예전과 똑같았다. 나는 또다시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엔 달라질 거야'라는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자, 친구도 연락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1년이 넘었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

'은중과 상연' 속에서는 모든 오해와 갈등을 뚫고 진짜 우정을 확인한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극적인 사건도, 마지막 고백의 순간도 없다. 그저 점점 멀어지고, 어느 순간 연락이 끊어진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연스럽게.


"네가 건강하고 잘 나갈 때 내 생각은 했어? 내가 너를 욕할 수 있을 때 사과를 했어야지!"


드라마 속 이 대사가 내 마음을 파고들었던 이유다. 나는 비교적 일찍 연락했다. 5년이면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버린다.




그래도 의미 있었던 시간들

하지만 그 시간이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교실 뒤편에서 나눈 시시콜콜한 농담들. 시험 끝나고 함께 먹던 떡볶이 맛. 여름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반으로 나눠 먹으며 걸었던 골목길.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카페에서 보낸 오후들.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이제 안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만이 우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친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 친구도 자신만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서로를 웃게 하고, 서로의 삶에 작은 빛이 되어주는 관계를 원한다.




오래된 미래

끝내 잡지 못한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길의 온기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혹시 우리가 은중과 상연처럼 또다시 40대에 만나게 될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웃을 수 있을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어쩌면 그 상상이, 우리 우정의 가장 아름다운 결말일지도 모른다.



어떤 관계는 끝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 끝이 아프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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